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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Feb 10. 2022

패러다임시프트가 생각보다 어려워.

페미니스트 되기도 어렵고요

 친한 친구가 청약에 당첨됐다. 3년전에.

정말정말 축하하는 마음 가득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악덕집주인들 때문에 집을 시발매매 한 상태라서 급하게 유주택자가 되었고, 무주택자에게만 주어지는 청약기회는 잡을 수 없었다. 유주택자는 85타입 이상만 접수가능했는데 추첨이라 셀 수 없이 많이 떨어졌다. 됐었다고 해도 분수를 크게 윗도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감당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상황이 이러니 절친의 청약당첨을 완전 축하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지만 그 친구는 배아플 친구가 아니었다.




오이도에 있는 "동키카페"라는 곳이에요


 


 시간이 흘러 입주가 가까워오고 집단대출로 납부하던 중도금과 잔금을 주담대로 바꾸는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나라의 대출정책이 확확 바뀌었다. 이 은행과 저 은행의 이율이 다른 것은 당연했고, 어제와 오늘의 이율도 다르고, 된다고 했다가 안되기도 하고 안된다고 했다가 되기도 하니 걱정이 쌓이고, 잔금일을 늦추자니 그 사이에 금리가 더 올라가면 감당해야 할 이자도 올라가기 때문에 관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다가 친구의 경우 지금 살고 있는 전세보증금을 받아야 하는데 핵상승장에 조금 신나신(것 같은) 집주인이 특올수리된 집과 별로 차이나지 않는 금액으로 전세를 내놨고, 아무것도 고쳐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내놓는 통에 집이 나가기는 커녕 보러오는 사람도 없어 전세보증금까지 합친 돈을 대출받아야해서 그야말로 영끌이었다.


 시시각각 전화나 카톡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공유하면서(친구나 나나 돈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걱정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내 친구만 이렇게 발을 동동거리고 있지? 친구 남편은 뭐하고 있는거야? 돈을 안보태줬나? 얘 혼자 다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건가?'

 이런 생각이 쑤욱 들어왔다.


 "오빠(친구 남편)한테 (돈)좀 달라고 해."

 "그럼 오빠는 뭐래?"

 하면 친구 남편도 자영업하는 사람이라 속시끄러울 일이 많아서 알아서 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살다보면 속시끄러울 일이 많기야 하겠지만 지금 내집마련해서 입주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이슈가 어디있당가.



"오이도박물관" 1층입니다. 카페가 아니에요. 박물관이 오션뷰...



 상황이 녹록치 않을텐데 보고있는 가전이나 가구도 사실 내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라 얘네 괜찮나 걱정하다가 망고진리를 다시금 떠올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가난해."


그렇지, 암암. 형편이 되니까 그러겠지. 내 앞가림을 잘하자, 고 다짐하면서도 친구네 가계에 걱정을 가장한 오지랖은 멈출 수가 없었다. 대체 쟤 남편은 왜, 왜, 왜.. 이 상황을 알고 저런 가구점에 가는건가.. 이자에 할부에 저거 다 감당가능한건가...의구심이 쌓여갈 때쯤 우리집을 돌아보았다.





 2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매하려고 주담대를 받고 마통을 트고, 청약담보대출까지 받아 인테리어를  하고 식탁과 책장 등 필요한 가구들을 샀다.


 집은 남편명의, 마통도 남편이름, 청약대출도 남편청약통장, 인테리어비용도 남편이 댔고, 가구들도 남편돈으로 샀다. 우리는 맞벌이지만 나는 내 돈으로 쓰레기봉지 하나 사지 않않았다. (내가 버는 돈은 그냥 내가 쌓아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구하나


 "니네 맞벌이잖아, 집 사는데 넌 얼마 보탰어? 대출 다 남편 이름이야? 그럼 가구는 니가 샀어?"


 이런 질문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주양육자와 서브벌이를 맡고 있고 남편은 서브양육과 주벌이를 맡고 있다. 주양육자에게 경제적 책임까지 묻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동키카페에서 바라보는 석양. 캬-



 친구의 가정은 자영업을 하며 시간을 융통성있게 통제할 수 있는 남편이 주양육을 맡고 있고 내 친구는 워낙 야근이 많아 육아에 깊이있게 참여하진 못한다. 평소에

 "애는 엄마가 키워야하는데 일한다고 너무 바빠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 친구지만 굳건히 일을 해내고 있다. 그것이 그 친구의 인생이고 남편과 합의하여 만든 일상이다.


 아이도 함께 키우고 돈도 함께 벌고 좋은 것도 함께 고생도 함께 모든 걸 함께함께 하는 일상을 만들고 싶지만 가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아빠같은 일을 엄마가 할 수 있고 엄마같은 일을 아빠가 할 수도 있는 것. 누구 하나가 옭아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짐을 나누거나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거구나 싶었다.


 누구도 나에게 "왜 니 남편이 모든 경제적인 짐을 다 지는거야?" 라고 묻지 않고, 오히려 그런 질문을 생각해낸다는 자체를 신기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나도 친구에게 "왜 니가 모든 경제적인 짐을 다 지는거야?"라고 묻고 싶지 않아졌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MZ세대의 끝을 잡고, 그래도 "요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벌이는 남자, 육아는 여자" 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나를 대면했고,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옛날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도 멘탈도 갑자기 변할 수 없다. 좋은 쪽으로는 더 그렇다. 나이가 드니 더더욱 시간이 들고 경험과 견주고 익숙함을 깨야하는 귀찮음과 대결해야한다. 그래도 조금씩 깨트리다보면 나도 조금씩 괜찮은 어른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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