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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Dec 03. 2022

퇴사할 결심, 퇴사할 핑계

일단은 여기까지


전업주부가 고 싶나 아닌가, 를 고민했던 것이 2021년 초였다. 팬데믹의 정중앙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보니 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직업군의 많은 사람들이 이직이나 퇴직 혹은 아예 새로운 일 등에 대한 도전을 생각해봤을 것 같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업무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나에게 상당히 잘 맞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데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검열이 심해지는 것인가, 내가 이 직업에 과연 맞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여러 고민들은 앞선 글에 다 써놨고,


https://brunch.co.kr/@kimojung/147




 이후에 무슨 일이 닥치던지 일단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직업윤리적으로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주부' 보다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같다. 기혼남성이 퇴사한다고 자동으로 전업남편 되지 않을테니)


 내 직업은 언어치료사인데 마음이 조금씩 저물어가면서 이렇게 영혼없이, 열의없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내 자식은 둘째치고 남의 자식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절친이 육아휴직에 들어간다고 했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친구는 출산할 때 6개월을 썼고 나머지를 지금 쓰는거다.


 그래, 나도 10년 됐으니까 6개월은 쉴 수 있는거 아닌가.


근데 친구의 육휴와 내 퇴사가 뭔 상관이야.


 상관관계를 만들어보자.


2015년경부터 계모임을 하는 절친한 친구 셋이 있다. 그 친구들과 3년 부은 곗돈으로 2019년에 말레이시아+싱가폴 여행을 갔었고,

너무 좋았었고,


https://brunch.co.kr/@kimojung/49



그 후로도 빚과 돈으로 우리의 관계는 더 똘똘 뭉쳐졌는데,

팬데믹 덕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돈을 계속 모으고 있던 중 이제 하늘길이 열려 궁디가 들썩들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친구의 육휴는 궁디들썩임에 급발진을 걸었고, 나의 퇴사를 향한 소망함은 여행을 3주짜리로 계획하며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고야 말았다.

여행지도 정했고 발권도 했고 숙소비도 입금했다.


아들이 만들어준 핸드메이드스누피콜라보샤넬페이퍼토드백



 나와 같은 시점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동료는 올해 근속10주년을 맞으며 한달의 유급휴가를 받았지만 프리랜서로 입사한 나는 한달정도 휴가를 떠나려면 그만둬야 한다.

그만둘 수있는 완벽한 핑계.



 정규직으로 입사한 그 동료는 올해 하반기를 맞으며 팀장이 되었다.


 "팀장님, 나 11월까지만 일하고 그만둘게요."

 "왜요??"

 "여행가게요."

 "여행을 그만두고까지 가요?"

 "네"

 "얼마나 갈 건데요?"

 "한달?"

 "언제가서 언제오는데요?"

 "12월말부터 1월말."


우리는 되게 친하다. 근데 이렇게 밖에 대화가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의 공기를 기억한다.

한 두달 전 다른 프리랜서직원이 급작스럽게 그만두었는데(초딩이 된 자녀의 돌봄교실 이용을 위해선 최소 2대보험(고용+건강) 가입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우리 기관에선 가입불가로 인함)그 후로 직원이 뽑히지 않아 당혹스러운 와중에 나까지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 기관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되긴 했다.


 "그럼 선생님, 어차피 12월 마지막주는 우리도 쉬니까 12월까지 일하고 2월에 다시 돌아와요. 선생님도 10년 일했고 힘든거 알지. 실장님께(팀장위에 실장) 얘기해볼테니까요. "

"........"

"선생님, 분명히 다시 일하고 싶어져."

 "왜요?"

"통장보면..."

"(일동)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흡을 가다듬고, 진심장전) 솔직히, 다시 일하고 싶어질지 모르겠어요."

 "일하고 싶어진다니까."

 "아닐걸, 나 질렸어."

 "흠........그럼 어쩔?"

 "그냥 떠난다고 말해줘요."


퇴사장전 2달전 나의 마음을 통보하였고, 님들도 마음을 정해달라 했다. 나의 마음은 수리되었고 2달간 새 직원영입에 실패하는 중이다. 지원자가 없는건지 적격자가 없는건지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았다.


 "선생님, 적당히 놀고 이력서 써요."

 "........"

 "진짜 마음이 떴구나."

 "고마워요."

 "고마우면 이력서를 쓰라고."

 "미안해요."

 "미안하면 이력서를 쓰라고."

 "네 뭐...알았어요. 고마워. 냅다 잘가라고 하지 않아서."

 "일흔까지 일한다며"

 "그땐 그랬지."

 "좋겠다."

 "밥살게."

 "퇴직금도 없는데 뭘 사."

 "그럼 쌤이 사주던지."

 "하아... 잘가요."



그만두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지난 1-2년간 남편과 지속적으로 얘기해왔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엄마께 말씀드리는게 문제이자 숙제였다.


 기회가 있으면 정규직으로 옮기지 집에 들어앉을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일하는 복에 대해 40여년간 설파해오신 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가 지난 몇 달간 제일 큰 고민이었고,


사실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을 통해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엄마아빠생활비엔 적지 않을 것이라 그만둔다고 당장 안드릴 건 절대 아니지만 드린다고 받으실지도 모르겠고, 여러 애매한 마음들이 있었다.


 




애매한 마음은 사실 나만의 것이었고

엄마는 생각보다 쿨하게

"김서방이랑 얘기가 됐으면 그렇게 해"라고 했다.


사십넘어까지 진로를 엄마와 상의해야하는 것이 좀 웃겼지만 그 '진로'에는 부양의 몫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건데

말씀드리고 나니 후련했고 엄마의 반응이 쿨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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