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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May 09. 2023

미우라아야코탄생100주년, 내 결혼 10주년

배움은 또 다른 욕구를 낳고

 배움은 즐거운 것이고 배울수록 새로운 것이었다. 배움은 늘 시험을 동반하는 괴로움을 이고지고 살아야했던 초중고와 대학, 대학원시절을 거쳐 배움과 사색이 있는 생활은 새로운 즐거움이었고 활력이었다.


 주1회 문화센터에 가는 것은 PT를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혼자서도 운동할 수 있지만 나의 몸상태와 운동능력에 맞게 코치를 받듯이 문화센터에 가서 배우는 것도 비슷했다. 내가 혼자 읽으면서도 감동받을 수 있지만 다 읽고 '아 감동적이다'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작가가 살았던 배경, 작가의 다른 작품, 영향을 받았을 법한 주변 작가들에 대해 배우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서가 이어지게 하기도 했고 몰랐던 작가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늘 난해하고 부담스러웠던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을 읽고 배웠다. 솔직히 지금까지 기억은 안나지만 이해하려고 집중의 끈을 놓지 않으며 애썼던 기억은 생생히 갖고 있다. 프란츠카프카의 <성>과 <변신>, 미아자와 겐지,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소설과 천상병, 윤동주, 김수영과 신동엽의 시 등을 배웠다.

  학교다니던 시절에 시인과 시의 특징을 두고 저항적, 투쟁적, 소극적, 남성적, 목가적 정도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늘 아쉬우면서도 답답했다. 시의 한 구절, 한 단어로도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있을 수 있는 것을 배우면서, 평가는 필요하고 시험은 쳐야하는 시절이니 그렇게 사고를 한정짓는 것이 방법일 수 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했다. 


 문학은 평생을 두고 읽고 누려야하는 것인데 감수성 풍부한 시기에 문학을 그렇게 소비해버리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사는 동안 충분한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의 기쁨을 많은 이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입시나 합격을 위한 공부를 했을 때와는 결과 격이 다른 공부이고 배움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보내다가 팬데믹과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몸과 마음이 분주해져 2년 정도를 쉬었다. 쉬는 동안에도 책은 계속 읽었고, 단톡방에 계속 머물면서 누구의 책을 읽고 배우는지 늘 염탐하며 '나도 다시 나가야지, 나가야하는데..' 하던 도중 예상밖의 공지가 올라왔다.


 보통 공지가 올라오는 것은 다음 학기에 배울 작가와 책, 관련된 영상이나 자료 정도인데 이번엔 색다른 공지였다. 바로 <미우라아야코 탄생100주년 기념 홋카이도문학기행>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재미있게 보는 것이 신기해 나도 같이 드라마로 (초등학교 때)접했던 <빙점>, 책이 원작이라기에 (중학교 때)책으로도 찾아 읽었던 <빙점>,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종교적인 색깔도 갖고 있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드문드문 20대에 한 번, 30대에 또 한 번,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싱글이던 시절에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를 읽으며 잔잔하기도 하면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결혼생활에 대해 나름 상상도 해보고 꿈도 꿔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삼았던 기억도 났다.  


 잔잔하게, 한편으론 대단하게 다가왔던 그 미우라아야코!

미우라아야코의 책에 깊은 감동을 받아 그의 문학관이나 기념관이 있을까 싶어 한참 검색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10년대였을 것이다. 홋카이도 아사히가와라는 곳에 그의 문학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후기와 가는 방법 등을 알아봤었는데, 아무래도 관광으로만은 가기 심심한 도시인지 도시자체에 대한 후기가 별로 없었고, 가는 방법도 관광객이 가기에 만만치 않아보였다.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남편에게 얘기해보았는데 반응이 없었다. 


 가고싶다, 가고싶다... 늘 마음에 꿈처럼 바람(램)처럼 막연히 갖고 있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소원을 이루려면 내가 그 문학기행에 가야하는데, 난 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둘이 있다. 등하교와 학원, 주말과 일상의 살림을 남편이 다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보는데 있어서는 나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 물어나 보자. 결혼10주년이니까 명분은 충분하지 않나.


 "나 미우라아야코 문학기행 가고싶어."

 "어딘데?"

 "삿포로."

 "그 문학교실에서 가는거야?"

 "응."

 "그래, 가."


 오? 또 이렇게 곰방 되는건가?

몇 박 몇 일인지, 언제 가는 지 묻지도 않고 그냥 가란다.

생각을 하고 대답한건가?


 "오! 왜이리 결정이 빨라? 고마워!!"

 "자기 혼자 가?"

 "오빠도 갈래?"

 ".... 그럼 나는 어떡해?"

 "애들 봐야지."

 "어? 그럼 난 뭐 해줄거야?"

 "오빠도 가고 싶은 데 가, 나 오면. 결혼 10주년 여행은 각자 가는 걸로 하자."

 "오! 좋아!!"


 결혼10주년여행의 새로운 시도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남편 기분이 좋아보여서 언제 가는 지, 몇 박 몇 일인지, 친정엄마께 언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 등의 브리핑을 했다. 자기 혼자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도취된 나머지 나의 정보들이 남편에게 잘 접수된 건지 모르겠다. 일단 남편은 다 알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근데 자기 샤넬가방은?"

 "살거야."

 "그럼 샤넬도 사고 여행도 가?"

 "가도 된다며."

 "아니, 어떻게 사람이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살아?"

 "나는 그러고 살아, 촤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웃을 때 좀 박장대소 하면서 뒤로 넘어갈 듯 웃는 편이라 내 웃음소리는 좀 시끄럽고 성가시다. 그래서 남편도 애들도 입을 좀 가리고 호호호 하고 웃으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내 웃는 모습을 흉내내는 게 우리 집만의 유행인데, 이날 역시 내가 크게 웃어 제꼈더니 우리 집 유행에 따라 남편이 내 웃음소리를 흉내내며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 후로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샤넬사라고 준 돈을 회수하지 않되 여행에 대한 찬조금은 없을 것과 

남편도 2주간의 혼자 여행일정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심도깊은 약속을 구두로만 하고 나는 문학기행에 선착순접수를 했고 예약금까지 보내버렸다.



 겨울의 삿포로를 간다.

 거의 30년가까운 세월의 연정을 품은 작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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