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소리 해야하는 게 산더미
나의 결혼10주년기념 여행은 나 혼자 떠나는 <미우라아야코 탄생100주년기념 문학기행>이다. 혼자만 가는 것은 아니다. 이 여행패키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딸린 남편과 자식들을 동반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핵심.
내가 야근이나 회식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칼퇴를 요구했고 아이 봐주시는 친정엄마께 초과 근무도 부탁드렸다. 초창기에 남편은 말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안 될 수도 있어."
"안된다니? 쟤네 안동 김씨(남편 성)야, 광산 김씨(내 성)가 아니고."
남편은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저렇게 안 될 수도 있다는 무리수를 두곤 했다. 육아의 책임이 나와 내 친정 엄마에 있다는 것 처럼. 그럴 때마다 "애들은 니 새끼다" 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들 이름지을 때 내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넣지 않은 것에 대한 가늘고 긴 복수다.
남편의 야근이나 회식, 심지어 출장갈 일이 있어도 남편은 나에게
"나 출장가."
라고 얘기하면 끝나지만
나는 평소보다 귀가 시간이 2-3시간 늦어지는 야근이나 회식으로 남편에게
"나 야근해."
라고 얘기'만' 하면? 아마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친정엄마께 몇 시까지 더 계셔 주실 수 있는지, 나는 몇 시까지는 귀가가 가능한 지, 남편이 몇 시 까지는 집에 도착해줘야 하는 지 등을 구구절절 부탁하고 설명하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변신할 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반전을 안내해야 한다...... 얘네가 니네 김씨지 내 김씨냐고 따져 물을 수 밖에 없는 지난한 10년의 세월을 통과한 내가 있다.
그 시간동안 애들도 자랐고 (아마도)우리도 자랐지만 그렇다고 며칠씩 엄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지는 경험해 본 바가 없다. 이번에 경험해보면 되겠다.
출발하기 한 달 전 부터 매일 아침 그 날 아이들의 스케쥴을 남편에게 브리핑했다. 브리핑을 할 만큼 바쁜 아이들이 아니었지만 등교-방과후수업-하교-학원-귀가 등의 스케쥴을 아빠인 남편은 거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반복학습, 반복경험이 필요했다. 남편은, 좋게 말하면 꼼꼼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답답한 스타일이라 아는 것도 또 물어보고 또 설명하게 하고 또 확인하고, 그러는 편이다. 좀 피곤한 스타일인데, 어쩔 수 없다. 이 여행은 신혼여행 이상으로 나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문학기행은 금요일에 출발해서 수요일에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금요일 아침 8시30분 비행기라 금요일 등교부터 남편이 해야했다. 매요일마다 어떤 방과후수업을 하고 어느 학원을 갔다가 몇 시에 들어오는지 알려줬다. 학부모에게 알림장격인 클래스팅과 e-알리미 어플을 남편 폰에도 설치하게 했다. 나 없이 등교할 날이 단 4일이긴 하지만 한 번 익혀놔야 다음 번(?)에 더 익숙해질 것이기에(나의 빅피처).
화요일은 다른 날 보다 빨리 귀가할 것이고, 수요일엔 줄넘기를 챙기고 늘 편하게 입지만 수요일은 특별히 더 편하게 입혀서 보내라고 설명했다. 주말이 특히나 길고 험할텐데 아이들이 좋아했던 거북이가 있는 카페와 나라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을 추천해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공부할 것이 있어서 일본에 5박6일 다녀올 것이고, 올 때는 너희가 좋아하는 캐릭터키링을 사오겠노라 말했더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해했다. 왜 가냐, 몇 밤 자고 오냐, 꼭 가야되냐.. 고 울며불며 매달릴까봐 나름대로 스토리라인을 다 짜놨었는데 1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오케이.
다 컸구나.
나만 크면 되겠구나.
친정엄마에게 설명하는 것이 제일 부담스러웠다. 김서방이랑 사이가 안좋으냐, 왜 굳이 혼자 가냐, 애들이 뭐라고 안하냐, 그렇게 유난떨고 사냐...... 돈이 넘치냐 등 오만가지 잔말씀을 들을 각오를 하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첫째가 돌 가까웠을 때 인사동에서 박수근 특별전이 있었다. 토요일 오전에 아이를 좀 봐주십사, 특별전에 다녀오고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애 낳았으면 애 낳은 여자처럼 살아, 왜 그리 유난이야?"
평일에도 내 출근때문에 엄마가 봐주시니 나름 육아스트레스가 있으셨을텐데 주말까지 맡기려고 하니 엄마도 막막하셨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나와 우리가정에 큰 역할을 해주셨고 지금도 많이 도와주시지만 저 말씀을 떠올리면 야속한 마음을 꾹꾹 눌러야 할 정도로 조금은 상흔이다.
이번엔 특별전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각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래? 김서방이 허락했어? 좋겠다, 다 니 복이지 뭐. 내가 무슨 요일에 가는 게 김서방한테 편할라나?"
오, 우리 엄마 맞나?
10년의 세월동안 달라진 건 아이들이 자란 것 뿐 아니라 조금은 견고해진 남편과 나의 관계, 또 요즘 세대를 이해하는 엄마의 마음도 다 포함된 것 같다. 이렇게 순적하게 일이 진행되어갔다.
온 우주가 내 여행을 도와주고 있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