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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May 11. 2023

혼자 가는 결혼10주년기념여행, 드디어 출발!

혼자 비행기타는 것도 처음

 드디어 내일이다.

추울 것을 대비해 패션은 포기하고 보온을 위주로 옷들을 챙겼다.


비행기는 오전 8시30분.

집합시간은 오전 6시20분.

그래서 공항리무진 탑승시간은 5시20분으로 정했다.


우리 집은 역세권이 아니라서 정류장으로 나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하는데 오전 5시에 운행을 시작할런지 모르겠다. 남편이 정류장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오호호- 고마워!


 전날 아이들에게 엄마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잘 지내고 있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며칠 간 엄마는 없지만 대신 할머니를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더 큰 것 같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른들 손을 덜 타고, 내 동생이 아기를 낳고 동네로 이사오게 되면서 엄마는 다시 간난이 육아에 투입되셨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그립지만 아가에겐 할머니가 필요한 것을 이해하고, 대신 엄마가 오래 있어주니 좋은데 그래도 할머니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늘 있었다. 맛있는 걸 먹거나 재미있는 곳에 가면 내 폰으로 할머니께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아이들이었다.

 나도 이 여행을 기대하는 만큼 아이들도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걱정이 아이들이었는데, 이렇게 쿨한 모습을 보니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리무진은 시간에 맞춰 왔고 짐도 잘 실었고 남편은 어디서 주웠다며 2만엔을 내밀었다.

오호호- 또 고마워!

10년만에 어색해져버린 가벼운 허그로 5박6일간의 집안일을 맡기고 바이바이.


 리무진이 출발하자마자 나는 완전 잠들었나보다. 눈뜨니 인천공항이었고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3년만에 간 공항은 새벽부터 인산인해였다. 나는 추운 곳으로 갈거라 내복에 니트와 후드를 껴입고 코트까지 입었는데 민소매 원피스에 얇은 가디건만 입으신 분들도 꽤 많이 보였다. 아마도 동남아로 가시나보다. 그런 분들을 보자 별안간 더워졌다. 그렇다고 외투를 들면 짐이니 그냥 입고 다녔다. 더웠다.





 티켓팅 전 가이드님을 만나 확인사항을 체크하고 각자 시간맞춰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체크하라는 확인사항이 내가 조장이라는 것이었다. 허허. 전체인원이 35명이라 적당히 3조로 나뉘어졌고, 잘 모르는 분들(당연하지)로 조가 편성되었다. 사람 수만 잘 세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출국심사와 면세품 인도까지 마쳤다.


  여행에 앞서 만들어놓은 카드로 라운지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휴대폰 충전도 하고, 지금쯤이면 아이들이 일어났을 시간일텐데 싶어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원래 아침 시간은 분주한데 굳이 거기에 분주함을 더 뿌릴 필요가 없다. 셀카도 찍으며 나름 허세로운 시간을 보냈다. 허허.


 약속된 시간에 맞춰 게이트앞으로 갔다. 일행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룸메이트분도 만나서 인사했다. 나와 동갑인 줄 알았는데 한 살 많은 언니였다. 더 좋았다. 우리 엄마랑 여행간 적도 머나먼 옛날인데 우리엄마아빠 또래분들이 80퍼센트 이상인 모임에 낑겨 여행을 가다니,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일단은 많이 신났다. 비록 나 혼자 왔지만 이건 결혼10주년 '기념'여행이니까.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슬픈일이 아닌 이상) 신나는 일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얽혀있는 것만이 아니라면 참 좋은 나라다. 해외여행을 너무 가고 싶은데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야한다면 사실 일본만한 나라도 없다. 깨끗하고, (속은 어떨지 몰라도)친절하고, 가깝지만 이국적인 느낌은 확연하고. 그래서 후쿠오카, 나고야, 오사카 등 2시간 정도의 비행이면 갈 수 있는 곳들을 갔었는데 삿포로는 처음이었다.


겨울에 정말 멋지다는 그 삿포로.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겨울이면 생각나고, 재개봉까지 했던 그 오겡키데스까, 러브레터의 삿포로.

삿포로맥주가 있는 삿포로.

3시간30분이나 걸린다는 삿포로.

비행기에서 푹 자고나니 신치토세공항에 도착했단다.





잠만자면 이동해있는 놀라운 마법의 날.


 35명 모두 입국심사장을 잘 통과했다. 창밖으로 삿포로의 풍경이 조금이나마 보였다. 이상했다. 눈의 도시라는 삿포로에 눈이 없어. 아직 눈 올만큼 춥지 않은가? 1년의 반 이상이 눈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기엔 좀 빠른 겨울인가?

눈길이 아니니 사람이나 차나 더 안전하긴 하겠군.


 우리 일행은 모두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와 5박6일동안 우리를 도와주실 기사님을 만나 버스에 탑승해서 일본에서의 첫 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35명의 대인원이라 식당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에 일본여행 때 갔던 때를 떠올려보면 대게 작은 식당에서 먹었던 기억인데, 이렇게 대인원이 갈 수 있는 대형식당들을 가본 것으로도 일본에서의 새로운 경험이다.




첫 끼니. 온모밀은 처음먹어보았다. 온모밀도 냉모밀만큼이나 맛있는 음식이었다. 저 계란푸딩(?)이 별미였다.



 일행중엔 영화평론가이신 분도 계셨다. 이런 다채로운 조화일수가.





나는 잘 몰랐던 영화였는데 <윤희에게>라는 김희애주연의 영화의 한 장면을 여기 "그랜드파크오타루"에서 찍었다고 했다. 바다배경의 참 멋진 곳이었다. 호텔자체도 연식이 좀 있는 만큼 고급지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연말분위기와도 어울렸다.


 

 공항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갈수록 눈이 많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랜드오타루호텔이 있는 주변에 다다르자 눈이 무릎정도까지 쌓여있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눈이 많이 쌓여있지 않아 아쉽다"고 하셔서 깜놀했다.

 "이것보다 더 많이 쌓인다고요?"

 "그럼, 나 작년에 왔을 때는 허리보다 넘게 쌓여있었어. 사람 하나 지날 수 있는 길만 나있는거야. 얼마나 멋지고 신기한데."

 아, 그렇구나. 무릎정도의 눈은 아직 눈이 아니구나.




호텔을 나와 걸으며 일행분들과 그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여기보다는 쥰의 고모가 했던 카페가 참 예뻐서 거길 가봤으면 좋았겠다고도 하셨다. 일정을 다 마치고 호텔에서 유튜브로 영화요약을 보았는데 예상치 못한 전개였지만 여운이 풍경과 함께 짙게 남아, 영화를 보고 왔다면 오타루와 홋카이도 전체의 풍경이 남다르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오면 바로 얼어버려 빙판길이 되는 우리나라의 겨울길과는 달랐다. 눈이 녹을 새가 없이 또 오고 또 오고 하는지 땅이 얼어있지도 않고 찻길이 시커멓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얀 삿포로에 처음 가본 나는 이 모든 풍경들이 영화같고 그림같았다.


  겨울개가 겨울을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내면은 눈밭에서의 질주욕구 댄스욕구로 가득차 있었는데 초면이신 분들 앞에서 그럴수는 없어 내적댄스를 상상하며 힘차게 걸었다.



믿으실지 모르겠는데 왼쪽이 4시30분경이고 오른쪽은 6시59분 입니다



해가 일찍지는 만큼 배도 빨리 고팠다(?).






저녁메뉴는 샤브샤브였다. 겨울에 어울리는 메뉴.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따뜻하고 넉넉하게 배를 채웠다.


첫날과 둘째날은 같은 호텔에서 묵는다. 아침에 집 나오고 거의 15시간만에 신발을 벗고 실내에 들어갔다. 성격은 급하지만 행동은 느린 나는 룸메언니에게 화장실을 먼저 쓰시라고 하고 천천히 짐을 풀었다. 클린징용품들을 꺼내려고 파우치를 열었는데 깜짝놀랐다.




어머어머, 수제편지라니.

역시 내 딸.

사랑이 많은 딸.

감정표현도 아주양 분명하고 자기 주장도 강한 아이라 부담스럽고 내 딸이지만 정말 나랑 똑같구나 싶어 섬뜩할 때가 있는데 이런 모습은 나에겐 없는 모습이라 너무 사랑스럽다. 너무 고맙고,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무사히 삿포로에 도착해 오타루까지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따뜻한 물에 씻고 나니 9시 정도.

룸메 언니와 눈이 마주치면서 동시에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15시간동안 커피를 안마셨구나.

근처에 카페가 있을까, 편의점이라도 있지 않을까, 피곤하지 않으면 주변 한 바퀴 돌아보죠, 하며 패딩을 걸치고 나갔다. 호텔안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근처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어서 라떼를 마셨다. 아직 우린 젊으니까 아이스라떼.


캬, 살 것 같아.


이미 신나게 살아있는 중이지만 커피가 주는 삶의 힘은 또 다른 차원의 퐈이팅이다. 카페인의 지배를 전혀 안받는 편이라 마시는 김에 한 잔 더 사서 마시며 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안부카톡을 보내고 닦았던 이빨을 한 번 더 닦고 12시도 되기 전에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집합시간이 오전 7시30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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