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가는 곳이 미주든 유럽이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풍경 감상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나는 굳이 그럴 거면 유럽까지 왜 가냐, 유럽에서는 일단 미술관과 박물관 관람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파리에 6박 8일 머무르면서 미술관과 박물관도 가고 중간중간 풍경도 감상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기로 했다.
그냥 걷는 거 참 좋아함.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난 스케쥴에 맞춰서 다니는 걸 더 좋아함.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돈이니까.
남편은 나의 의견에 대부분 맞춰 주는 편이라 어떻게 하자고 재촉만 하지 않으면 좋은 컨디션을 보여 주는 편이었고, 여행하는 동안 딱히 다툼도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은 신혼여행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으로는 기피하는 곳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워낙 볼 것도 먹을 것도 많고 소매치기 같은 변수도 많아서 이혼과 절교의 가능성이 농후한 곳이라고 했다. 막상 가보니 그럴 법도 한데 오히려 그런 곳에서 더 진한 사랑과 깊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파리 여행을 통해, 진한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편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웃렛 쇼핑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파리의 오래된 까페 '레 되 마고' 에서 우리는 이번 여행에 대한 나의 감정,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적응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좋았어. 내 스타일대로 여행 왔으면 그냥 벤치에서 풍경만 바라보다가 뭐 먹고, 근데 비싸면 그냥 안 먹고 걷고 그러다가 숙소 가서 자고 그냥 그랬을 텐데."
"수백 들여 여기 왔는데 그런 여행이 가능해? 대체 관광 경영학과에선 뭘 배운 거니."
"그러게. 3일이면 질리는 여행을 했겠지. 자기 덕분에 미술관도 가고 고흐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그림도 보고 좋았네."
(모네의 수련 연작이 탄생한 지베르니에 갔었는데, 왜색이 짙어서인지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수출규제를 한터라 지금도 그렇지만 대일 감정이 더 좋지 않았다)
"여기 또 올 수 있어?"
"노력해야지, 이제 한국 가서 뼈 빠지게 일해야지. 허허."
"나는 여기 또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왜?"
"나라 자체가 금수저야. 조상 잘 만나서 이렇게 보물도 많고 관광객도 많고, 근데 땅도 비옥해서 농업도 잘된다잖아. 물가는 너무 비싸고. 부러워서 안 올 거야."
"난 또 올 거야."
"그럼 같이 오자."
"응? 하하하하하하."
"나 원래 허언증 하하하하하하하."
아무래도 남편은 단순하니까 그런지 맛있는 거 먹고 멋있는 거 보면 좋아하는데, 나는 그다지 단순한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원래 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맛있는 것을 먹고 멋있는 것을 볼수록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반도인 데다가 나라가 갈라져 있으니 외국 여행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비행기를 타고 꼭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혹은 배를 타고 라도), 그러니 돈과 시간을 상당히 들여야 하는, 그러니 (빚이라도 낼 수)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특권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큰 대륙에 나라들이 모여 있으니 싸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기차나 버스로 심지어 자전거나 도보로도 가능한 것이 유러피안의 외국 여행이다.
우리에게 외국 여행이라면 큰 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그냥 맘 먹으면 당일로라도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사람이 당일로 강원도 여행 다녀오듯이. 프랑스 사람에겐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도 있겠지만 '유럽 사람(유러피안)'이라는 정체성도 함께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코리안'이라는 정체성은 있어도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은, 적어도 나는 없는 것 같다. 낯설다. '아시안'이라고 하면 좀 구린 느낌도 들고.
6박 8일을 파리에만 머물렀는데 못 간 곳이 많다. 다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유럽 사람들, 특히 파리 사람들 너무 부럽다. 친절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비싸고, 불편한 것이 많은데도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파리의 저력이 부러웠다. 그래서 굳이 또 가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던 건가.
파리는 우리나라처럼 화장실 인심이 후하지 않아 까페나 식당에서 돈을 써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공중화장실은 저런식인데 하필 남편이 이용할 때 자기맘대로 문이 열려서 식겁ㅋ
하지만 우리 둘이 그 어떤 트러블도 없이, 물론 자잘하게 그 순간순간의 긴장감이나 짜증은 있었겠지만 아홉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다툼이 없는 걸 보면 정말 우리는 사이가 좋았나보다. 아니면 여행에 완전 집중을 했던지.
행복했다.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한 건 아니었지만 '행복했다'는 말로 퉁칠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소소한 수다가 잘 통하고, 웃음의 코드가 잘 맞았다. 남편을 믿을 만하고 의지하고 살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나와의 여행이 어땠는지, 앞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지 물어봤지만
"난 뭐 다 좋지 뭐, 자기가 가고 싶은 데가 내가 가고 싶은 데지."
내가 파악하기론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정말 좋았는지 아닌지 파악할 수가 없지만 설령 좋지 않았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일단 나는 좋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남편도 좋았다고 하니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할 것이고 지속적으로 폭 깊은 비자금을 형성해 놓을 것이다. 시절이 이렇게 되어 앞으로 해외 여행이 이전 처럼 가능할 지 어떨 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지만 해외가 불가능하다면 국내 여행을 심화 단계로 다녀도 좋으니 비자금은 부지런하게! 허허.
일주일 간의 부모의 부재가 아이들에게는 어땠을까.
워낙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일상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눈물을 삼키며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을 참는 내 딸의 모습에 친정 엄마가 마음이 아팠다고 하셨고, 그래서인지 그 후로 내가 출근을 하거나 주말에 혼자 장 보러 나갈 때면 좀 보채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아들은, 그냥 잘 살아 있었다고 한다.
결혼 선배들은 부부만의 여행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단 한 분도 애들 걱정하는 분들이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이 애들 걱정을 해주었지. 애들 걱정을 해주니 우리 애들 봐주셔야 하는 부모님 걱정도 해주고.
아름다운 2019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은 예상치 못한 일로 '아름답다'라고 말하긴 곤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2019년이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