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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12. 2020

7.2. 남편이 싫어서 놓고 간 건 아닌, 여행

걸리적거리는게 사실이긴 하지만

1.

3년간 부은 곗돈으로 3명의 엄마와 4명의 아이들은 싱가폴로 출발했다. 남편들은 떼놓고 '우리끼리'만 떠나는 여행이었다. 처음부터 남편을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주변에 우리의 여행을 자랑(?)하며 친구들과 아이들끼리만 가는 여행이라고 했을 때

"왜 그 중노동을 혼자?"라는 부정적인 반응

"와 진짜 부럽!"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반반이었다.

사실 조금 놀랐다.

다 부러워할 줄 알았다.

남편없는 여행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도 있구나, 신기하다 싶었다.


같이 살다보면 힘쓸 때 말고는 별로 쓸모없을 때가 좀 있는데(나한테만 그런가) 사실 육아엔 힘쓰는 일이 대부분이라 혼자 씻기고 먹이고 챙기는게 가능할 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다행히 싱가폴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가면 10대의 아이 셋을 둔 언니네를 만날 것이기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누가보면 조기유학떠나는 줄.. 줄 서 있던 사람들 다 웃고 난리였었다ㅋㅋ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아이러니한건지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 중 누구 하나 "아빠 보고싶어."하는 아이가 없었고, 아빠랑 통화하고 싶다거나 아빠한테 뭘 사다주자며 아빠 생각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우리의 남편들이 부족한 아빠라서는 아니라고 본다. 옛날 말로 하면 다들 가정적이고 부성애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하지만 이 나이대의 아이들(5~7세)에게는 그저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하구나 싶었다. 우리 셋은 다 워킹맘들인데 엄마가 6박8일 내내 출근도 안하고 하루종일 전담마크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큰 정서적인 안정감이 어디있겠나 싶다. 아빠가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아빠들도 함께 떠난 여행은 다음 편에) 엄마와 친구들과 깊은 유대를 만드는 중요하고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여행내내 아이들을 내내 붙이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언니네 가족 찬스로 아이들은 놓고 우리 세 친구들만 쇼핑몰에 가서 쇼핑도 하고 저녁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3-4일간 언니네 자녀들과도 친해져서 엄마가 없어도 신나게 잘 지냈다고 한다.

싱가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언니네 세 아이들과 함께 유니버셜스튜디오에 갔고, 언니네 부부가 우리 애들 넷을 봐주셨다. 우리도 신나게 놀았고, 아이들도 신나게 놀다가 잘 잤다고 한다. 이런저런 환경에도 처할 줄 알고 군말없이 적응까지도 잘 해주는 아이들이길(나한테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바라는건 너무 큰 기대일까. 그래도 기대해볼란다.


남편의 일주일은 어땠을까.

(다른 남편들은 잘 모르겠고)

남편을 공항에서 만났는데, 반가웠지만 또 반갑지 않았다.

음,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니 너무 좋은데 한국에 돌아가니 너무 싫은 것과 비슷한 감정이랄까.

공항으로 마중나온 남편이 참 고마웠지만 현실로의 버퍼링을 더 빠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버퍼링을 빨리 했다.


집에 오니 밥솥은 보온16시간으로 불빛을 내고 있었는데, 사실 116시간이란다. 내일은 먹겠지, 내일은 먹겠지 하면서 그냥 꽂아뒀는데 계속 약속이 생겨 다 먹지 못했다며. 전기밥솥이 전기 많이 먹는다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남편이 카드를 쓰면 나한테 문자가 오는데, 귀국날 아침 시간으로 내게 카드승인문자가 왔다. 내가 평소 가고싶다고 말했던 판교의 브런치카페였다. 아직 싱글인 친구를 집으로 불러 재밌게 놀고 자고 아침에 브런치카페에 갔단다. 남자 둘이 브런치카페라니. 브로맨스 돋는다. 그런 시간이 필요했겠지. 사실 아이 둘을 거의 연년생으로 낳으면서 나보다 남편이 더 친구를 끊다시피 했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만, 나랑도 잘 가지 않는 브런치카페라니, 게다가 판교라니, 남편이 쏜거라니. 그냥 남편의 친구로 살 걸 그랬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2.

우리 엄마아빠는 캠핑을 좋아하신다. 수년 전에 연예인 아빠와 그들의 자녀들이 출연했던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캠핑이 대유행하긴 했지만 그 훨씬 전부터 부모님은 캠핑을 좋아하셨다. 솔직히 나는 꼬리뼈가 길어서 침대가 아니면 잠을 잘 못자기도 하고, 굳이 그 이유(엄마한텐 핑계)가 아니라도 나는 사서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에서라도 우리 집보다 좋은 곳에서 머물고 싶다.


우리 엄마아빠는 여름 겨울 상관없이 비가오나 눈이 오나 일단 고(Go)! 하시는 좀 피곤한 스타일이시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단 생각에 별로 따라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7살, 5살이 되자, 우리 아빠가 캠핑다녀오신 사진을 집에 붙여 놓은 걸 보거나, 캠핑가야되서 우리 집에 못 오신다는 얘기를 다 알아 듣다보니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캠핑가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나의 직장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첫째는 유아백수가 되었고, 둘째는 누나도 안가니 나도 어린이집 안가! 하며 집콕생활이 길어지다보니 나도 아이들도 좀 예민해졌다. 그 와중에 엄마아빠가 속초로 캠핑을 가신다고 했다!

엄마아ㅏㅏㅏㅏㅏ!!!! 나도나도나도오오오오!!!!!


아이가 상석을 차지하는 바람에 방황하는 아빠의 몸ㅋㅋ 캠핑에선 언제나 진수성찬!! 애들은 뛰어놀다 와서 한 입, 또 놀다 와서 한 입, 계속 먹고 싶으면 계속 먹던지 말던지^^


친정부모님이 계시니 남편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고(진심), 시부모님이 캠핑가신다고 내가 같이 가고 싶을리 1도 없으니 남편에게도 굳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남편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을지도 모르니.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야영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서 같이 아침을 먹거나, 사우나에 가거나, 우리는 놀러 나가고 엄마아빠는 낮잠을 주무시기도 했다. 4월 말의 속초는 아직 겨울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샤워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숙소의 사우나가 절실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연속에서 놀고, 나도 엄마가 해주시는 편한 밥 먹고, 햇살이 좋은 낮엔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물고기처럼 노는 모습을 마스크끼고 바라보며 답답했지만 행복을 느꼈다.



경치좋은데서 맘편히 먹으니 0칼로리인것 같았고, 아이들이 나한테 들러붙지 않고 잘 노니 너무너무너어어무 편하고 극단적으로 행복했다. 분명 옷 다 입고 놀았는데 팬티까지 들어온 모래들을 털고 씻기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 할말하않, 좋은 기억만 가득했습니다. 진짭니다.


친정부모님과 두 번 정도 이런 여행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근데 내가 김서방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엄마아빠 따라 댕기는게 아녀."

했더니 아빠가

"우린 사이 안좋은데 그냥 같이 다녀. 하하하하하하하ㅏㅏㅏ"

엄마아빠랑 나랑 진짜 목놓아 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


남편 입장에서는 너무 애들 처가에 맡기고 노는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나보다.

엄마에게는 사위는 손님이라 같이 간다고 하면 신경쓰실텐데.

"김서방이 우리 엄마아빠랑 캠핑가는거 좋아해."해도 좀 그렇고

"김서방이 우리 엄마아빠랑 캠핑가는거 안좋아해."해도 좀 그렇고

아무래도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 좋아도 문제 안좋아도 문제인 것이 있다.

그래서 적절하게 우리 네가족끼리도 여행을 가고 하면서 나름 여행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사실 안맞춰도 되는데, 사서 고생뿐 아니라 사서 걱정도 하시는게 우리 부모님 세대니까.


그래서 이번 (늦)여름 휴가로 우리는 엄마아빠가 가시는 캠핑장 가까운 곳으로 (또) 숙소를 잡았다. 이번엔 남편도 같이.

남편이 있어서 더 좋았을지 더 걸리적 거렸을지 9월에 써볼게요!

더 좋기를 바랍니다. 진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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