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정 Aug 18. 2020

7.3. 부자가 아니니까 다 같이 돈 모아 함께 떠나요

남편들 아이들 다 몰고 2박 3일!


친구들과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했었다. 띨띨이의 활약 덕분에 더 재밌었고요?

https://brunch.co.kr/@kimojung/49


우리 세 친구 중 한 친구의 남편이

"다 같이 여행 한번 가자고 해."

라고 했단다.

여.행.한.번.가.자.고.해.

이 말은 농담으로 하면 안 되는 말인 걸 몰랐나 보다.


우리는 바로 추진에 들어갔다.

지난 6월 말의 일이다.


지난 해외여행이 남긴 빚도 다 청산했고, 새롭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여행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 남편이 제휴리조트 목록을 보내줬고, 3 가족이 묵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바로 라카이샌드파인리조트 였다. 방 3 화장실 3 62평으로 된 리조트는 딱 우리의 여행을 위해서 만들어진 리조트인가. 강릉에 있다.

밖에서 놀다가 저녁이 다 되어 입실하는 바람에 오션뷰는 다 놓쳤는데 수영장 뷰가 오션뷰 부럽지 않았다. 수영장 뷰도 완전 멋졌고 동남아에 온 듯한 느낌도 받았다. 테라스도 엄청 넓어서 아이들 수영복 말리기 편했고 미취학 아이들 넷이 꼬리 잡고 뛰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누구의 입에선가

매.년.여.기.오.자.

라는 말이 나왔는데. 나는 분명히 들었다구.


남편(들)과 같이 오니 좋은 것은


1. 운전을 남편이 다 한다.


혼자서도 애들을 잘 데리고 다니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놀아줄 에너지+운전할 에너지를 혼자 감당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는데, 남편도 같이 가면 적어도 운전은 남편이 하려고 하니까 나는 긴장을 좀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 많이 먹을 수 있다.


강릉의 대표 맛집 <엄지네 포차>는 꼬막비빔밥이 유명한데 꼬막비빔밥 하나가 35000원인가 한다.

애들이 웬만큼 컸으면 모를까, 핵가족 잔잔바리바리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양인데, 다 같이 가니까 많이 시켜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가서 먹으면 대기가 2시간이라고 해서 포장해왔다.

꼬막비빔밥과 바지락전.

리조트와 가까웠는지 아직도 뜨끈뜨끈하고 너무 맛있는 것.

표현을 잘 못해 민망하다. 진짜 맛있었다!

주문진 좌판 풍물시장에서 사 온 활어회와 대게


활어들 파닥거리는 것들 5마리 정도가 큰 대야에 있었는데 그게 5만 원, 대게 4마리가 10만 원

찜 비용, 회 쳐주시는 비용..등등해서 총 18만 원정도 들었던 것 같다.

좌판 시장 맞 편으로 건어물 시장도 있어서 건어물 쇼핑잼 탕진잼을 누렸다.


매운탕거리까지 해와서 회에 이어 엄청 푸짐하게 먹었고 대게 껍데기에 볶음밥 먹어야 하는데 그럴 정신이 없어 그냥 밥이랑 김만 넣고 비벼 먹었는데도 완전 맛있었다.


남은 매운탕 국물에 라면도 끓였는데 그것 또한 맛있고 난리. 다같이 먹으니 더 많이 먹고 난리. 절제할 수 없는 밤이었다. 뒤처리는 남편들 몫.


3.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곳은 테라로사 경포호수점


남편들이 점심 든든히 먹고 나더니 우리에게 나갔다 오라고 했다. 오면서 저녁거리 사 오라고. 다른 말은 안 들어도 나가라는 말은 제일 잘 듣지! 나가래서 나갔다.

해가 쨍쨍했지만 덥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시원한 날씨에 야외에서 커피라니, 것도 어른끼리, 심지어 강릉에서. 말이 안돼. 이런 비현실이 있나. 이런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시간도 있어야 그게 현실이지. 현실 속으로 우리가 불러들인 판타지!


친구 중 한명이 지독한 아미라서, 탄이들 뮤비에 나왔다는 바다에도 가봤다.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원 없이 사진찍고 즐거워했다.


쓸데없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라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쓸데없이 말이 많았고, 쓸데없이 많이 먹었고, 쓸데없이 사진을 많이 찍었고, 쓸데없이 많이 걸었다.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썼다. 많이.

하지만 이렇게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이 시간이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들에게 연락이 1도 없는걸 보니 질 놀고 있나 보다. 숙소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애들은 놀고 아빠들은 잤단다.

..........애들 봐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4. 아이들의 단결력 완전 강화

경포해변에서
양떼목장에서

경포해변은 우리가 있었던 숙소에서 산책로로 이어져 있어 이동하기가 정말 편했다. 168걸음 정도 걸으면 되었다. 한 가족씩 따로 휴가 와서 애들 놀아주고 모래 털어주고 씻기고 하려면 그것도 일인데, 다 같이 놀고 다 같이 씻기니 모든 과정이 "노는 일"같았다. 물론 귀찮고 에너지가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다 같이 있으면 더 잘 먹고 말도 더 잘 듣고 좀 각이 잡히는 느낌이 있다. 또 아이들끼리 잘 놀기도 한다. 혼자 넷을 보라고 하면 멘붕이지만, 우리들도 같이 있으면서 아이 넷을 보는 것은 서로 노는 격이 되어 편하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여행 중 어느 시점에 너무 조용해서 아이들을 찾아보니 붙박이 장에 넷이 들어가서 속닥속닥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만 찍어주고 좋은 시간 보내라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녀와서 아이들에게 그 때 너희 모여서 무슨 얘기 했었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들 다 자면 새벽에 깨서 몰래 놀기로 약속했어."

란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이 꼬꼬마들이 그런 작당모의도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웃겼다.


다녀와서도 잘 놉니다 @ 경기도 광주, 봉골로 카페

몇 번의 여행이 엄마 아빠들도 친해지게 해 주었고,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해져 스스로를 "4총사" 라고 부른다. 얼마 전에 코로나로 인해 기본소득이 지급되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아이가

"그럼 그 돈으로 우리 여행 가자!"

라고 했단다.

그러게, 현금으로 나왔으면 생각해봤음 직도 했겠다.





우리는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번 더 놀러 가자고 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지금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이다. 나는 놀러 가지 못한다고 징징대지만 사실 의료인들 앞에서 이런 징징이야 말로 쓸데없는 짓인 것을 알고 있다. 2주간 강력한 거리두기 시행에 따라 우리 가족은 휴가를 취소했다. 숙소도 환불받고, 회사에 냈던 휴가도 물렸다.

"다음에 맘 편하게 가자"

며 물린 거지만 그 "다음"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가 이렇게 올 줄이야.

'언빌리버블'이란 말은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이전 14화 7.2. 남편이 싫어서 놓고 간 건 아닌,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