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도 외식도 여행도 이제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길고 긴 집콕 생활에 지쳐 가까운데라도 가서 코에 바람 좀 넣고 싶은데 멀리 가기는 꺼려지고, 동네 놀이터나 근린공원은 지겨울 때 우리가 찾는 곳은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이다.
저수지이긴 하지만 호수라고 하고 싶다.
어차피 둘 다 머물러있는 물이니까.
호수 뒤쪽으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고 호수 주변으로 키 크고 멋있는 나무들과 함께 산책로가 있다. 게다가 산책로 중간엔 멋들어진 정자가 있다. 이 곳 산책로는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길인 것 같다. 그래서 바닥은 흙바닥.
호수 뷰 카페에 간다고 멋 부리고 구두를 신으면 산책은 포기하고 식사만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넓은 호수 같은 저수지를 끼고 네댓 개의 브런치 카페와 베이커리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브런치카페. 요즘 같은 때엔 실내는 좀 걱정스러우니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실내여도 괜찮을 것 같다. 주말에는 주차부터가 문제라 아침이 아닌 이상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곳이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주말이어도 문제없이 주차하고 실내에도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이미 자연이 만들어놓은 놀이터에 반해 뛰어 나갔다. 배고프면 오겠지 생각하며 남편과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브런치를 즐겼다.
아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서 주워온 나뭇가지로 흙을 파며 놀고 있다. 이럴 줄 알고 여분의 옷도 챙겨 왔다. 마음이 편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파전과 동동주가 어울릴 것 같은데 우리 앞에 있는 건 에그 베네딕트와 아메리카노이다. 풍경은 포천인데 메뉴는 뉴욕이다.
이런 부조화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8년 차 부부는 아이들이 놀다가 달려오면 먹을 거 한입 넣어주고 보냈다가 또 달려오면 먹을 거 또 한입 넣어주고 보내는 일을 반복하며, 혼란한 시기에도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고 일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일상을 조금은 힘들어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놀고 잘 먹는 아이들의 성장에도 깊은 감격을 느끼며 집에서 차로 단 5분, 하지만 교외로 길게 나들이 다녀온 것만 같은 주말의 즐거웠던 외출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가고 싶다. 그곳 풍경과 잘 어울리는 커피의 향이 어디선가 풍겨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