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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04. 2020

7.1.엄마가 된 친구들과 여행하기

껌딱지는 붙이고, 친구들 중 꼭 띨띨이 한 명은 있음.

  대학 다닐 때 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어쩌다 보니 1~2년 차이로 아이들을 낳았고, 그러다보니 계속 친하게 지내다가 이왕 친한 김에 돈도 친해지게 해주었다. 우리 셋은 다 맞벌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10만원은 조금 벅찼고, 애매해서 적당한 7만원을 매달 부었다.

매달 곗돈을 부으면서 결정한 곳은 싱가폴-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에 친한 선교사언니부부가 살고 있어서 같이 놀기(사실은 우리가 신세지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제일 어린 아이가 36개월이 넘으면 가자고 했는데, 36개월이 넘어도 아직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웠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우리가 7만원씩 2년 부은 돈으로는 동남아의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도 여유있게 놀 수 있는 수준의 자금이 아니었다. 게다가 싱가폴은 동남아 물가가 전혀 아니고. 눈물을 머금고 1년 연기하여 우리는 곗돈을 8만원으로 올려서 모았고, 아이들에게 "너 말 안들으면 말레이시아 못가!!!"라고 엄포를 놓으면 떼를 쓰다가도 뚝 그치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에 가기 300일 전부터, 285밤 남았어, 247밤 남았어, 아직도 200밤 남았어? 189밤 남았어 하며 하도 노래를 불러서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에, 친구네 아이들 유치원에 소문이 다 났고, 특히 우리 첫째는 어린이집 졸업앨범 촬영일정이 있었는데 우리 여행 때문에 한 주 뒤로 미뤄 주시는 은혜도 베풀어 주셨다.




드디어 하루 전.

내일이야!!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11월에 떠난 여행이었지만 넣어 두지 않은 여름 옷가지들과 화장품들, 인스턴트 음식들 등.

이제 없는건 가서 사면 됨 하는 마음으로 제일 중요한 여권을 여러번씩 확인하며 공항으로 갔다.


 나는 정확하고 꼼꼼한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문제를 만든다면 내가 아닌 두 친구들 때문이지 나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싱가폴에서 택시를 타고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을 계획으로 우린 싱가폴항공을 이용했는데, 싱가폴은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대신 여권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 딸의 여권유효기간이 단 두 달 남은 것이었다.


  나는 수도 없이 나와 아이들의 여권을 확인하면서 딸 여권의 21 JAN 2020 이 문구를 오천 번 넘게 봤음에도 그게 3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월이어도 6개월은 안 남은 상황인데 어쩌자고 가만히 있었지..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고, 공항에서는 '비행기는 태워주겠다. 싱가폴에 가서 입국을 못하더라도 항공사의 책임은 없다'는 문서에 싸인을 하고 비행기를 탔다.


 기가 막혔다. 나는 자아발전을 위해 원어민 클래스를 3년간 다녔다. 호주에서 캐나다에서 몇 개월씩 살다 왔다는 사람들과 같은 반에서 같은 외국인 선생님과 말을 하고 듣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JAN이 3월이냐? 바보 아니냐? 독해 클래스가 아니어서 읽을 줄 몰랐니.


내 마음을 뚫어줘ㅠㅠㅠㅠㅠㅠ


아니나 다를까. 싱가폴에 입국해서도 심사대를 쉽게 통과하지 못했다.

 "너 여기 싱가폴인거 아니? 여긴 정확한 나라야. 내가 통과는 시켜주겠지만 말레이시아 못들어갈거야. 괜찮니? 니 책임이야. 알겠니?"

나 죄지었니..

내가 책임지겠다. 얘는 내 딸이다. 얘가 여기서 불법체류를 하겠니 위장취업을 하겠니. 내가 데리고 다닐거다. 나 혼자 온거 아니고 일행도 있다. 걱정마라. 일단 보내줘서 겁나 Thank you very much!


나 때문에 공항에서 허비한 시간이 얼마이며,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도 문제가 생길까봐 엄청 걱정했다. 다행히 국경에서는 직원이 제크같은 크래커를 먹으며 무심히 도장을 찍어주었다. 할렐루야 아멘.


싱가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짐도 있어서 9인승 벤을 불러서 갔는데 중간에 내리는 일 없이 차의 창문을 열어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고 통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다 자고 있었는데 자는 아이를 굳이 깨울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조호바루에서 이용한 숙소는 KSL리조트였다. 어른 5명에 취학아동 3명, 미취학아동 4명으로 총 12명이 4일간 머물러야 해서 큰 곳을 고르느라 고심했는데, 리조트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2층으로 된 숙소였다. 방이 4개, 화장실은 5개!


이 방만 싱글침대 3개였고 나머지는 킹 사이즈가 하나씩 있었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었다. 세탁실도 따로 있고. 완벽했다.


일행 중 JAN을 3월인 줄 알고 있는 띨띨이가 검색해서 찾아내고 예약한 숙소였다. 오션뷰는 아니었지만 38층에 위치해 있어서 시원시원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매트와 미끄럼틀 등이 준비되어 있어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숙소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에 띨띨이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 놓았고, 우리는 띨띨이가 주접만 떨지 않으면 모두가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직장 내 또라이 질량불변의 법칙= 여행지의 띨띨이 질량불변의 법칙


내 친구중엔 띨띨이 없어=내가 띨띨이


우리의 일정은 싱가폴 도착->말레이시아 조호바루로 이동->4일간 놀기->싱가폴로 이동->2일간 놀기->한국으로 출발

이렇게 6박8일 일정이었다.


신나게 조호바루 일정을 마치고 싱가폴로 출발!

싱가폴엔 센토사섬에 예약해 놓은 1박 50만원짜리 풀빌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혼여행을 뉴욕으로 갔던 나는 생애최초 풀빌라에 정말 기대 뿜뿜이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에도 갈 것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루지도 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싱가폴에 입국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조호바루에 들어올 때 별 일 없었기 때문에 바로 통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깜빡했다.

우리는 싱가폴에 가는 것이다.

싱가폴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정확하다는 나라, 싱가폴에 가는 것이었다.


국경에서 우리는 잡혔다.

기사님을 포함해서 다 내렸다.

경찰서 같은데로 갔다.

이유는 하나다.

내 딸의 두 달 남은 여권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시원한 경찰서에서 신났고, 기사님은 체념한 듯 팔짱을 끼고 쇼파에서 눈감고 앉아 있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에 가야하고, 루지를 타야한다고.

마리나베이샌즈에서 레이저쑈도 봐야하는데.

오늘 다 해야 하는 일정이라고!

여기서 이렇게 잡혀있으면 안되는거라고!


이걸 알고 있으면 JAN을 보고 영어사전이라도 펼쳐봤어야지, 이 띨띨아!


나나 내 가족만 억류(?)되어 있으면 괜찮지만 친구들의 여행시간까지 다 좀 먹게 되었다. 아 진짜!


-너 여기(싱가폴)에 더 머물 생각하지 마라. 큰 일 날지도 모른다.

-우리 이틀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기 비행기표 보이니? 니가 보내줘야 한국 간다.


라고 말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억류된지 1시간여 만이었다.

이런 발언권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얻을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미안했지만 기사님에게도 미안했다.

우리는 싱가폴에서 내리면서 미안하다고 하며 팁을 주었다.

기사님은 미안하다고 할때는 시크하게 "댓츠 오케이"하더니 팁을 드렸을 땐 "오! 땡큐!"하며 큰 미소를 보여주었다. 다행이었다. 일단 웃었으니까.


 우리는 싱가폴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센토사섬에서 신나게 놀 수 있었다. 루지는 타지 못했지만 3시간 30분을 불태워 유니버셜스튜디오를 정복했다. 맛있는 음식도 쇼핑도 모두, 우리의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 올려 미션클리어 하였다.  

1박 50만원이었던 그 풀빌라. 아마라 생츄어리...였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정말 컸는데, 밥을 한번 사는 것 보다는 보이는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우리의 여행 사진들을 모아 포토북을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외울 정도로 많이 봤다고 해서 뿌듯했지만 포토북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한숨이 쉬어진다. 여행가서 이렇게 저렇게 사유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포토북을 할부로 결제해서 6개월간 만이천원씩 빠져나가는 카드명세서를 보며 띨띨한 나의 뇌를 반성했다.


신나게 놀았다 정말.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아득하다. 언제 또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지나고 생각하면 추억이라고들 한다.


이것이 추억이려면 여행하는 동안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어야 하고

우리의 관계가 이전과 비슷하거나 더 돈독해졌어야 한다.

그러니까 현재가 좋아야 과거가 추억이지 현재가 별로이면 과거도 불행이다.


그런 면에서 띨띨이의 실수는 추억이(라고 믿고있)다.

그 후로 우리는 여행을 한 번 더 갔고, 돈은 계속 모으고 있고, 아이들도 4총사를 결성해 잘 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띨띨함이 추억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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