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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ul 21. 2020

6.2. 드디어 떠난 구남친과의 여행.

결혼 7주년, 파리로 날다

출발편은 14시35분 이라 집에서 여유있게 출발했다. 여행 기간동안 친정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기로 했고, 출발하는 날 아침 9시쯤 아이들을 데릴러 오신 엄마편에 아이들을 어영부영 보냈다. 어영부영하는 중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둘째랑 이별해서 좀 슬펐고,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는 첫째가 내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꾹꾹참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엄마가 방에 들어가 몰래 울었다는 카톡을 보고 또 슬펐지만, 뭐 할 수 없다. 우리 부부도 나름의 휴식같은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휴식이라기엔 파리 여행 자체가 빡쎈 일정이긴 했지만.       

                                        

내복으로 환복 완료

                                                                                                           


분명 지상에서는 만석이라 했는데 타보니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자리를 많이 옮겨서 우리자리 앞에 4자리가 비었다. 내 옆엔 풍채 좋은 외국인이 타고 있어 살짝 걱정했는데 이륙 후에 우리가 빈 자리로 옮겼고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자면서 갔다.

                                                                                               

10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무사히 파리에 도착했고, 나비고를 구입해서 숙소까지 잘 도착했다. 숙소는 20구내에 위치한 곳이 아니었다. 6박 48만원이라는 메리트가 커서 예약했는데 사실 각오했던 것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실 출발할 때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호텔을 하루라도 넣을까 하면서. 하지만 낭만은 한국에서도 누릴 수 있으니, 파리에서는 실속을 추구하자 했더니 정말 키스 한 번 못 하고 온 파리 여행이었다.) 



남편은 여행 당일까지 일정이나 숙소 위치 등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 숙소 정보를 안 뒤 취소나 환불이 되냐, 거길 꼭 가야하냐 등등 내가 두 달여 준비한 것들을 그제서야 알아보기 시작해서 엄청 빡쳤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시간이 없으므로 참고 넘어 가기로 했다. 정말 싸워야 할 일이 아니면 싸우지 않는게 좋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돈이고 돈은 진짜 돈이다.

(이 숙소 이후로 남편은 돈이 좀 들더라도 다음엔 호텔로 가자고 했다. 역시 산교육이 중요하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정리를 하고 씻은 후 그 다음 날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사실, 미술관으로 점철된 일정이었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마르몽땅모네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가이드 투어), 피카소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와 지베르니 투어, 라발레빌리지 아웃렛까지 정복하며 6박8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길을 잃었다거나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 퐁네프 다리 위에서 치고 받고(?) 싸우거나 하는, 진짜 여행답거나 낭만적이라고 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여행이고 현실 부부의 여행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정말 재앙이었을 것이다.


구글맵이 있는 휴대폰을 꼭 쥐고 다녔고, 내 생명만큼 가방을 잘 지켰고, 싸울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들지도 않았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그렇게 참아야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에게 적응을 잘 했거나 하늘이 도왔나보다. 

내가 전 날 밤에 다음 날의 일정을 브리핑해주면, 남편은 가장 효율적인 이동 방법을 검색했다. 나는 구글맵이 눈 앞에 있어도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하는 반면, 남편은 지도를 잘 읽는 편이고 길 찾는 촉도 좋은 편이라 여행지에서 정말 쓸모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주로 식당과 메뉴를 골랐는데, 우리 둘 다 별로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라 파리에 있는 동안 실패없이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은 함께 했다. 따로 다니다가 다시 만나고 하지 않았다. 항상 둘이 함께. 미술관도 함께 갔고 모든 작품을 함께 보았기 때문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런 저런 감상평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미술에 대해서 남편은 거의 無의 상태였다. 그러니까 작품들을 보긴 했는데 보기만 한거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이. 없다고 했다. 굳이 묻지 않았다. '동행'이 가장 큰 서비스이다. 키스보다 더한 사랑표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돈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치를 계획한 대로 다 실행하는게 현실인간의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성공했고, 그래서 뿌듯했다.


중간중간 친정엄마 휴대폰으로 보낸 딸의 카톡에 눈물이 날 뻔도 하고, 미술관 한쪽 벤치에서 졸고 있는 남편에게 좀 빡치기도 했다. 이것들은 애틋하고 재미있는 추억이다.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행 복 했 다



파리에서 보낸 시간이 모두 다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행복은 찰나이지 생활은 아니니까. 하지만 행복을 느꼈던 찰나가 자주, 빈번하게 있었다. 여행은 일상으로 초대한 판타지인 만큼 마음이 더 넓어지기도 했고.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돈과 상관없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남편의 따뜻한 말,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느껴지는 따뜻함과 편안함, 그냥 좋을 때....


우리 둘이 처음부터 잘 맞았든 노력을 해서 맞췄든 함께 삶으로 영글어진 편안함의 열매가 있었나보다. 지금까지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편안했고 가장 행복한 6박8일로 기억하고 있으니.

별 일이 없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 뿐 아니라 여러가지가 우리를 도와야 한다. 민박집 사장님도, 버스 기사도, 지하철 노조도, 비행기 조종사도, 한국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부모님과 아이들도.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선을 이룬 협력 덕에 우리는 한국으로 잘 돌아왔고, 일상으로 잘 복귀했고, 여행이 쉽지 않은 고만고만한 아이를 둔 친구들에게 무용담 처럼 자랑처럼 우리의 여행이야기를 했고, 여행 후 만든 앨범을 보여주었다.


현실 적응력은 애니멀 수준이며, 우리의 현실은 유아 두명 육아에 생계형 맞벌이라 우리는 특히 나는 여행의 기억을 까먹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설파하여 남편으로 부터 이혼당할 위기에 처해 있기도 했지만, 현실의 고달픔은 판타지까지는 아니어도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라도 해야 잊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게 판타지를 보내고 현실을 살아가며 다음에 올 판타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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