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트랜드의 공존

by 삼분카레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는 유행이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민감한 영역인 패션에서부터 시작해서 운동, 전자기기, TV프로그램, 먹거리, 문화, 경제활동 등

몇 가지 예로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헐렁한 바지의 요가 대신 풀칠로 발라놓은 듯한 레깅스의 필라테스가 대세를 이루는 운동이 되었고

날씬하기만 한 마른 체형보다는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가 이상적인 체형로 자리 잡았으며,

TV 예능프로에서 앞 다투어 음식을 컨셉으로 한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며,

팬데믹 이후 홈트가 유행이 되었고,

젊은 층들의 투자열풍이 불면서 다수의 MZ세대들이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인 자립, 조기 은퇴)족을 꿈꾸게 된 것도 일종의 유행이라면 유행이다.


주로 젊은 층들이 트랜드를 주도해 나가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젊을수록 변화지향적인 삶에 민감하고 욕구들도 다양한 반면 나이가 들면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기기들을 다루는데 습득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물며 디지털 문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버전과 개념들이 쏟아지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러한 트랜드를 쫓아 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면 인구분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장년층들은 속수무책으로 트랜드에 밀려나 불편한 삶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작년에 어머니가 오래 쓰시던 폴더폰이 그만 고장이 나고 기기를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출시되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에는 더 이상 이 형태의 폴더폰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스마트기능이 겸비된 폴드폰만 판매되고 있었다. 시골 노인들에게 휴대폰은 스크린에 터치를 하며 화면을 넘기고 하는 기능들이 어렵고 여전히 통화 기능정도로만 사용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 죽을 때까지 배워야지 하며 호기롭게 배우면 뭣하나 실컷 배웠는데 시골에 가서 써먹을 때가 없으면 금방 그러한 기능들을 까먹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기기에 가격을 올려 받을 수도 없고 사용인구도 적다는 이유로 예전 버전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없이 무용지물인 스마트기능을 겸비한 폴더폰을 구입했고 어머니는 여전히 예전 폴더폰과의 작별을 아쉬워 하셨다. 여타 많은 기능들이 없기 때문에 비록 기기가 크지 않아도 실제 화면 안의 글씨가 크고 단순했다는 것이 아쉬움의 이유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 어머니와 같이 전화기능정도로만 사용하는 인구가 아직은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에게 선호 받는 물건들이 단지 가격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작이 중단되면서 많은 어르신들은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논리로만 접근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장년들이 트랜드에 밀려 얼마나 큰 불편을 겪으며 살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의 삶의 질은 더 나아지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들어가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많은데 사회 시스템들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외면당하며 사는 것은 그리 달가운 삶이 아닐 것이다.


트랜드 변화로 또 한 가지 큰 불편을 겪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ARS전화상담 기능이다. 요즘은 쳇봇 기능까지 추가되어, 직접 사람이 아닌 기계들과 상담을 하기에 어르신들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도 없으며 아예 그런 시도조차 꺼리게 되면서 더욱 고립되는 느낌일 듯하다.


인력을 줄이면서 회사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불편함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세상이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트랜드를 쫓으며 뛰어가야 하는 인구분포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중장년층들의 아픔은 어디에다 하소연하고 요구해야 하나.


사회적 보호조치 아래 중장년층들의 트랜드도 엄연히 존중받고 확대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향의 경제>에서 저자 유승호씨는 ‘환경의 구속을 받는다는 것은 선택지가 한두 개밖에 없다는 것이고, 구속을 적게 받는다는 것은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취향이 다양한 사회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취향이 다양하다는 것을 세대별 선호하는 트랜드들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맥락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세대, 연령 구분을 뛰어 넘은 다양한 트랜드가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환경이 가하는 구속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세대간의 이해 존중과 특정집단의 고립감이 해소되면서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년 후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