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이 말을 건네 왔다.
-엄마 조나단 알아?
-응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말이야?
딸은 통곡수준으로 웃었고,
-맞어 그 갈매기도 조나단이었지
그리고는 자기가 원래 말하려고 한 예능 프로에 나오는 콩고 출신의 남매 조나단과 파트리샤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제 보았던 책의 주인공 이름은 생각이 안 나도, 어릴 때 읽었던 책 이야기나 불렀던 동요 가사는 틀림없이 생각이 잘 난다.
그래서 어른들의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배움에는 끝이 없겠지만 그만큼 한창때 배운 것은 기억이 오래 간다는 말이겠지 정도로 해석한다.
꿈을 향해 날아가는 조나단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유명하고 감명 깊은 명언을 어린 내 가슴에 부리로 쪼아 새기듯 남겨주었다. 그 덕에 살아오면서 무수히 접한 조나단을 모조리 제치고 딸이 묻는 조나단에 어떠한 필터도 없이 갈매기 조나단을 떠올렸던 것이다.
자라오면서 나는 독서광도 문학소녀도 아니었지만 점점 좋아하는 척 흉내 내기를 일삼았더니 어느새 실천이 되고 있었다. 책을 가장 많이 읽게 된 때는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좀처럼 쉴 줄을 모르던 남편은 워크홀릭 수준이었고 나는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주말을 보내고, 휴가는 책으로 떠났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찾고 고르면서 다행히 은행 대출 대신 도서관 대출카드는 수도 없이 찍고 다녔다. 잠들기 전 언제나 동화책은 읽어주었고 자녀 양육 관련 책을 보면서 잘 키우려 노력했다.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작심삼일로 끝나는 일들이 태반이었지만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결심은 끝나봐야 또 그 속에서 방황했기에 결과적으로는 늘 책 주위를 맴돌았던 셈이다. 동화책이어서 그림이 많고 글밥이 적었지만 내용이 주는 간결한 메시지와 감동의 정도는 성인책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단련된 동화책 읽기를 통해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무수히 반복해온 실패와 성취를 기반으로 독서에 대한 안목은 점점 넓혀지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이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고들 말하고 있는데 내게도 그런 경험이 하나 떠오른다.
중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던 때였다.
학기제가 다른 중국학교에서 들어와 아이 학년을 결정하는데 선택의 귀로에서 머뭇거렸다. 입학당시의 친구들과 같은 학년으로 가자니 따라가기 힘들까 걱정이 되었고, 한 학년 아래로 가자니 교우관계에 혼잡이 생길까 그 또한 걱정이었다. 부모가 망설이는 만큼 아이도 많이 망설였다.
그때 내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책이 있었는데 실제로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려지게 되면 선택지들의 장단점을 적어보라고 되어 있었다. 장단점을 적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고과 다방면적 생각들이 모여 결국 단호하고 후회가 적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메세지였다. 실전으로 사용하게끔 도표로도 안내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소년용으로 나온 그 책을 큰애에게 건넸고 스스로 체크해 보면서 결정하게 했다. 한 학년 아래로 복귀를 했고 그 후로 후회되는 찰나가 분명 있었을 것이나 스스로가 결정을 했을 뿐더러 그 방법적인 면에서도 철저한 자기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나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당장 결정을 못할 경우에는 몇 날이고 묵혀둔다.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방법을 고민하고 주위에 물어보기도 한다. 의외로 자연스럽게 저절로 해결될 때가 더 많지만 정말로 결정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에는 그때 그 책이 알려준 방법대로 장단점을 적어보고 점수를 매겨보면서 나는 책이 안내해준 길을 따라가곤 한다.
자주 그 책을 떠올려 보고 활용도 해 보지만 그 이후로는 도무지 그 책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책 제목이 <선택>이었던 것으로. 저자의 이름에 ‘펜‘ 자가 들어가는 5~6글자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내 기억의 저장고에는 오류가 작동되어 아직도 찾지 못한 책으로 남아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헌책방 기담수집가>의 저자 윤성근님을 찾아가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