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독서토론논제 포함>
책은 줄곧 내게 모멸감을 주거나 받은 적이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평소 우리는 모멸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영화대사에서처럼 모욕이라는 말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모멸감이라는 감정은 사용빈도에 비해 훨씬 넓게 깔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상대에게 모멸을 주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는데다가 표정이나 말투로 쉽게 그 감정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모멸감이라는 정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조감하면서 파헤치고 있다.
모멸감이란
인간의 기본 감정 중 수치심이 있다. 수치심은 인간다움의 징표이자 존재를 부정하는 파괴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수치심이면서 동시에 모욕감 형태로 나타나서 자신에게 모욕을 가한 사람이나 집단을 파괴하려는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두 얼굴을 가진 것이 ‘수치심’이다.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법과 사회규범의 통제를 받는다. 규칙을 어겼을 때 개인은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그 매개 고리를 저자는 수치심으로 보았다. 수치심과 모욕감은 비슷한 감정이다. 수치심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움으로 유발되는 것이라면, 모욕감은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화가 나는 감정이라고 했다.
“모멸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파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할 때마저도 무시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하게 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로부터 부각되기 위해 돈으로 남과 구별짓기를 좋아한다. 또한 감정노동자들을 무시하고 가혹한 서비스의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역사적 배경
캐나다인과 결혼한 나의 친구는 한국인의 정서 중 하나인 ‘한’에 대해 남편에게 설명을 할 때 매우 난감했었다고 했다. 그는 결혼 전에 한국에 거주 경험이 있었지만 ‘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이 우리 민족이 가진 특정한 감정이듯 모멸감 역시 한국인들에게 만연된 감정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에 만연된 모멸감의 원인을 크게 신분제도와 집단주의로 보았다. 계급사회이던 조선까지는 신분제도에 의해 사람의 귀함과 천함이 구별되었다면 지금은 재력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권력과 지위와 부를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욕망은 신분제도는 붕괴되었으나 신분의식은 지속하고 싶어하는 이유다.
집단주의에 익숙하던 민족은 빠른 근대화를 겪으면서 사회적 결속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남 눈치 대신 자신의 철학에 기대어 사는 개인주의가 성숙되지 못했다. 합리적 개인주의가 완성되기 전에 기존의 공동체가 빠르게 해체된 개인은 모멸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모멸감의 일곱 가지 존재 방식
이 장에서는 모멸을 유발하는 다채로운 상황들을 일곱 개의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비하. 열등한 존재로 구분짓는 차별, 비웃고 깔보는 조롱, 대놓고 또는 은근히 밀어내는 무시, 시선의 폭력에서 섣부른 참견까지 일삼는 침해, 불쌍한 대상으로 못 박는 행위인 동정,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긋난 오해”
평소 우리가 빈번하게 행하고 있는 행동들이다. 때로는 관심과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은근한 모멸감을 상대에게 가해왔는지 모른다.
모멸감 주고받지 않으려면
품위를 지키는 일이 때로는 목숨보다 중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감정노동자에게도 ‘감정은 팔지만 자존심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품위를 지킨다는 것은 나아가 인권과 정의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것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의식향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보는 역지사지를 넘어 역지감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성 키우기
사회적 의식 향상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국 가장 궁극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은 개인의 의식이다. 지위와 권위와 부를 자신의 정체성이라 믿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에 쉽게 노출된다고 한다.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려면 모멸을 위트로 넘기고 평정심을 가지도록 애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잘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고 우월감이 행복의 원천이 아님을 명심하라고 당부한다.
감정사회학 분야
감정을 다루는 사회학이라니 생소했다. 모멸감이라는 단어로 책 한 권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놀라웠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요소들이 많아 처음에는 불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서 사회적 공론화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생각 나누기
논제1
저자는 소비의 규모와 수준면에서 한국사회에 만연된 형태가 ‘구별짓기’라고 말합니다. 쉬운 예로 ‘거주지’를 예로 들었는데요. 고급 아파트들이 외부 공간과 철저하게 분리되어지기 위해 주민 전용 출입 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입주민들의 자부심을 배타적으로 빚어냄으로써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은 자기보다 못한 이들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p.89~90)
논제2
저자는 우리 사회에 모멸감이 만연한 이유로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동시에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는데요. 저자는 개인주의 장점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점을 들며 옹호하는데요. 여러분은 개인주의의 확립이 위계화된 사회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p.141)
논제3
저자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지금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사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행복감의 정체가 대부분 ‘우월감’에서 시작 된다고 말합니다. 우월감은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증명”하면서 살맛을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저자의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p.298~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