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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May 11. 2024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  누리님의 결혼식  >

누리씨는 좀 특별한 청년이다. 물질만능주의, 소비지향주의,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하게 통용되는 단어들과 역행하는 삶을 사는, 보기 드문 청년이다. 그 대신 환경보호와 동물보호, 사람들 관계 중시와 같은 이 시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실천하며 사는 건실한 젊은이이다. 


누리씨가 도서관 글쓰기 모임에 들어오게 되자 모두가 입을 모아,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젊은이라고 칭찬했다. 매주 그가 가져오는 글을 보면서 그만의 색깔을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스물셋,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말로만 ‘친환경’을 실천하는 데 한계를 느껴 변산 공동체학교로 가서 3년간 농사를 배우고 체험했다. 졸업 후 유학 가는 셈 치고 농촌 생활을 배우러 갔다는 그의 말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직감했다. 그의 모든 생활은 환경을 위한 일들로 습관 되어있다. 비행기의 탄소배출을 염려하여 가능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새 옷을 구입하기보다는 중고 매장에서 사 입고,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고 친환경제품을 구매한다. 결혼을 위해 신혼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누구나 이용한다는 웨딩플래너의 손을 누리씨는 빌리지 않았다. 몇 개월 전부터 결혼식을 위해 손수 기획하고 준비해 오면서 한껏 들뜬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았다. 


숲 해설 학교에서 근무하는 그의 색깔에 맞게 숲이 있는 공원에서 야외결혼식을 하고 싶어 했다. 결혼식장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지인이 운영한다는 온실과 북서울꿈의숲 두 군데를 온라인 투표에 부치는 신선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거리로 인한 하객들의 편의를 위해 누리씨가 간절히 원하던 온실을 포기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하마터면 축하객들을 다 수용하지 못할 뻔했다. 결혼식장은 유명인의 웨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축하하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결혼식 단상의 꽃장식을 위해 플로리스트를 초빙하는 대신 친구 찬스를 쓴다고 했다. 꽃은 도서관의 글쓰기 멤버 중 꽃 체인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찬스로 시중가의 삼분의 일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매했고, 친구가 꽃을 배달받아 손질하고 장식까지 도맡아 해 주었다.


도매시장에서 배달 온 꽃을 하룻밤 보관하고 손질하는데 도서관만 한 장소는 없었다. 순백색의 꽃으로 더욱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하얀 꽃잎만 남기고 초록 이파리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팝나무의 조그만 꽃잎들을 받히고 있는 수많은 초록 잎을 떼어내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시간이 요구되었다. 부산에서 8시간을 운전하고 올라온 신부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도서관 사람들이 손을 보태었다.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신부와 부모님은 등 떠밀어 먼저 들여보냈다. 남은 우리는 새벽 1시까지 꽃을 다듬으며 잊지 못할 결혼식 전야의 추억을 만들었다. 


식장에는 누리씨의 대학 동아리 샌드패블즈가 와서 신부가 신랑을 향해 부르는 사랑의 세래나데 반주를 맡아 주었다. 결혼식을 위한 준비들이 모두 자기 일인 양 십시일반 역할을 맡아 하는 것 같았다. 마을에 있는 혼례를 위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손을 보태는 전통의 방식과 흡사했다. 누구라도 기꺼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마력을 지닌 누리씨였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지는데, 결혼식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첩장부터 식장 그리고 진행하는 순서까지 어느 것 하나 누리씨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아름다움이 적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딱딱하고 식상하고 의례적인 결혼식이 아니라 모두를 즐기게 하는 축제 같았다. 누리씨는 ‘드디어 우리 결혼해요’라며 외치는 듯한 몸짓으로 연신 몸을 흔들며 신부 입장을 했다.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낭독하는 사랑의 편지는 그들의 풋풋한 사랑에 하객들을 웃고 울게 했다. 농촌공동체에서 만난 두 사람은 쑥국을 먹으며 사랑 고백을 주고받았고, 이제 맛있는 두부찌개 매일 같이 해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8년간 꽃피워온 두 사람의 사랑은 만남부터 결실까지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소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 될 것 같다. 두 사람의 앞날이 여전히 아름답고 순수하고 사랑스럽길....


이날의 결혼식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였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나왔나 곰곰 생각해 보았다. 당당하면 자만하기 쉽고 검소하면 누추하기 쉬운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누리씨의 삶이 이토록 아름다운 비결은 자신만의 색깔을 잘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이 바래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너무 진해지지 않도록 절제하는 그의 실천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물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좋은 일은 쌍으로 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좋은 소식이 하나 생겼다. 우리 도서관이 누리씨를 염두해 두고 공모한 미래 교육지구 사업에 선정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서관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체험 재능기부 하겠다던 일이었는데, 약간의 사업비를 받아 할 수 있게 되어 그와 도서관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곳, 인연을 맺는 이곳, 주거니 받거니 서로 도와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이곳은 이름하여 마을 작은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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