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기영의 소설 '마지막 테우리'를 읽고 >
1945년 해방과 함께 국민들은 모두 완전 독립인 줄 알았다. 온전한 독립은 없고 일제로부터의 해방만 있었을 뿐, 미군정이라는 억압의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3.8선이 그어지고 이른 시일 내에 냉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북청년단을 경찰에 공조하게 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악행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느니 싸워 죽기를 택한 양민들에게 지배자들이 가하는 학살에는 일말의 양심 따윈 기대할 수 없었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이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순만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초원만이 그가 있어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오름과 야초 더미와 소들과 바람이 그의 유일한 낙이요 소일거리였다. 인간 잡사보다 초원의 야생이 좋은 이유는 물가에는 벗할 옛사람이 남아 있지 않지만, 초원에는 옛 바람이 그대로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초원마저도 물러설 자리가 없어 위태로워 보였다.
순만의 삶이 외롭고 불운했을지언정 테우리로 사는 계절에는 자신에게 스스로 임무를 부여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의 진혼을 달래주고, 잊지 않겠다고 매일 바람에 실려 보냈을 것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은 가족마저 위안부였던 그녀를 거부하자 평생 동안 한순간도 떳떳할 수 없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지 않은 채 옥분은 시장통의 온갖 민원신고를 도맡아 한다. 위안부 사과 요구를 받아내기 위해 온 천하에 자신을 드러내는 친구 정임과는 달리 옥분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옥분은 언젠가는 자기가 나서야 할 때를 위해 와신상담한다. ‘기억하기 위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옥분이 친구를 대신해 위안부 사과 요구 연설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순만이 초원에서 테우리를 자처한 것도 모두 ‘기억’을 약속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우리가 까발리고 떠벌려야 할 때이다. 4.3이 이토록 무자비한 사태였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군사독재 세력의 철저한 처벌과 은폐 때문이었다고 현기영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들의 은폐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또 언제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침묵해선 안 된다.
십수 년간 여수에 살면서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제주사태에 관해서도 여러 번의 알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나 자신을 책망하면서 이후로 ‘기억’을 기억하려 한다.
*테우리: 주로 들에서 마소를 방목하여 기르는 사람, 제주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