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분카레 Apr 20. 2024

발 없는 새

< 정찬 장편소설, 창비 >

어려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

소설이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세 번을 읽고서야 겨우 독서리뷰를 쓸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과할 정도로 많이 등장한데다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의 경계가 모호했다. 더불어 영화, 책, 역사적 사건들이 다방면으로 거론되어 이해를 위해서는 배경지식들이 필요했다. 그 중심에 있는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4월1일 장국영의 사망일을 추모하기 위해 <패왕별희>가 극장에서 재개봉 되어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설을 가장한 한 편의 역사서였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난징대학살 사건을 스토리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난징학살 현장에 한국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한․중․일 삼국이 난징학살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의 영혼을 달래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가 이 책을 집필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리뷰-- 역사 속 희생자들이 비추는 빛을 간과해선 안 된다

소설은 화자인 ‘나’가 얼후 연주자인 워이커씽를 만나면서 전개된다. 워이커씽은 화자보다 스물다섯 살이 더 많은 인물로 중국의 일제 침략, 국민당시대, 문화대혁명 등 굵직한 근현대사의 역사를 관통한 사람이다. 화자는 한국인이며 기자이다. 두 사람은 가상 인물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실제 인물들과 조우하게 된다. <패왕별희>를 제작한 첸카이거 감독, 뎨이역을 맡은 장궈룽이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데 순간 나는 소설책이 맞는지 책 겉면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소설에서 허구가 가지는 가치는 현실에 은폐되었거나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작가는 말한다. 허구인 소설 속에 실재 인물과 사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작가는 이들을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 두었다.


이뿐 아니다. 경극 유명 배우 메이란팡, 북한의 춤꾼 최승희, 일본의 위안부 연구가이자 저자인 아이리스 장이라는 실존 인물들도 대거 출현한다. 이들은 워이커씽이 삶을 종주하는 동안 적지 않은 관계를 맺은 인물들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난징대학살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고,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극, 어머니에 대한 연민, 나아가 역사에 대한 적개심으로 눈을 감고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맹인 악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패왕별희>의 장궈룽을 극 중 뎨이 역할에 몰입 하도록 건드려 준 사람도 그였다. 촬영이 끝나고도 뎨이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궈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 앞에서 개인은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한다. 권력 앞에서는 사랑도 우정도 매도당한다. 권력은 개인의 실존을 허용해 주지 않고 오히려 저항할수록 더 잔인하게 짓밟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화자의 고모할머니는 일본 위안부 희생자이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곳이 난징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분희 언니는 자신보다 어린 화자의 고모할머니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다. 고모할머니는 기댈 사람이 있었지만 분희 언니는 그럴 사람이 없어 결국 자살하고 만다. 한국의 기자와 중국의 얼후 연주자가 서로에게 끌리게 된 이유는 동일한 아픔이 교집합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아이리스 장이다. 그녀는 개인과 역사의 관계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파헤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지른 악행들이 어떤 심리 상태에서 이루어졌는지 밝혀내고자 했다. 그런 심리가 형성된 원인을 일본의 사회구조와 문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아이리스 장은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의 침략으로 받은 상처를 파헤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말하려던 것이었다. 묵인하고 있는 당사국을 부끄럽게 했다. 워이커씽이 실존했던 인물들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을 살아 움직이게 한 장본인이라면, 아이리스 장은 그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역사 속에서 먼저 희생당한 분들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있다’고 했다. 희생자들이 역사의 캄캄한 내부를 밝히는 진주 같은 발광체라는 말에 나는 진하게 공감했다. 그들이 밝혀주는 빛을 그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해자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진심으로 고백하도록 사과를 받고, 떠돌아다니는 영혼을 달래주어야 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다.


‘허구’는 은폐된 현실에서 ‘진실’을 밝혀내는데 가치 있는 도구로 이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절감했다. 우리의 몫은 아직 다하지 못했다.

이전 08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