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되었음에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 탓에 지난여름의 더위가 아직 잊히지 않는 요즘이다. 나뭇잎은 어떤 미련이나 원망 없이 매일매일 자신에게 충실하고 있는 듯하다. 가로수의 수려한 성숙에 비해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자꾸만 부끄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또 한 해가 다해가는구나. 스산한 마음이 들 때쯤 다행히 마음을 둘 대상이 생겼다.
듣게 되고, 듣고 싶고,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내게도 생겼다. 아는 가수라곤 청년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대부분이고 요즘 가수라면 딸 덕에 알게 된 BTS와 잔나비가 전부였었다.
더군다나 록 밴드의 음악이라면 나 정도의 세대는 범접할 수 없는 음악 장르라 여겼다. 들어보려는 시도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의식적 기피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공산품처럼 시장의 구미에 맞게 다듬어져 출시되는 아이돌 가수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의 가수 탄생의 길은 한결같겠거니 여기며 검증도 해 보기 전에 지레짐작으로 판단해 버렸다. 그런 내게 신문물에 눈을 뜨게 해 준 이가 있었으니.
친구 지니는 음악으로 치유를 받아왔다. 음악의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치유라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지니는 이상은의 노래를 통해 이런 수혜를 누려오고 있었다. 콘서트를 다니고 팬 미팅에도 다녔다. 그 음악의 세계관을 좋아했다. 상업화와 인기몰이에만 연연하는 연예계에 환멸을 느낀 이상은은 음악을 위해서만 수십 년을 꿋꿋하게 걸어온 가수라고 했다. 강변가요제로 시작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곡은 사실 몇 곡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6집이라는 방대한 앨범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만의 음악성을 고집해 왔단다.
그런 지니였는데 최근에는 이승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의 노래 가사에 매료되고 그러면서 사람에게 빠져들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달 이승윤이 3집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날,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이승윤의 쇼케이스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친구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가수니까 흔쾌히 수락했다. 무엇보다 가을의 초입에 야외에서 가수의 콘서트를 관람하는 건 퍽이나 낭만적일 것 같았다. 누구의 음악을 듣던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야외에서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설레었다.
이승윤은 아이돌 가수는 아니지만 10년이라는 무명 생활을 접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으로 봤을 때는 아이돌스타 격이다. 그러나 TV에는 좀처럼 나타나는 일이 드물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싱어게인’에서 우승한 가수쯤으로 알고 있다. 지니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이승윤에 대해 딱 이만큼 알고 지나쳤을 것이다. 지니의 제안으로 쇼케이스를 보게 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점점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현란한 기타 선율과 드럼의 박진감이 한데 뭉쳐 깊은 사운드를 내는 록의 음악에 심취해 버렸다. 시끄러울 거라는 편견은 편견일 뿐이었다.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과 싱어송라이터의 의도를 듣고 나니 가사의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명언 제조기라고 할 정도로 깊이가 있고 생각이 많은 가수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성숙한 그이다. 그러면서 또 천진난만하고 까불이 캐릭터도 함께 가지고 있다.
가사들이 혁명적이다. 노래 가사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얼’, ‘훈수’, ‘개론’, ‘사상’ ,‘늑매’ ‘전시’, ‘거론’, ‘호명’ 등 학술 논문에나 등장할 것 같은 단어들이 노래마다 흩뿌려져 있다.
가장 자기 다운 자신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여러 곡에서 나타난다. 난잡해지는 사회 안에서 살아내려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비주류에게 관심을 가진다. 손가락질하는 손과 다독이는 손길이 공존한다. 거칠게 내 지르는 질호와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런 목소리 덕에 거센 파편들과 찬란한 별들이 동시에 내 가슴 가득 밀려왔다.
하고 싶은 말들을 가지런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뿌려 놓았다고 한 만큼 가사를 차분하게 해석하려 든다면 옳지 않다. 그저 던지는 메시지의 뉘앙스를 느끼며 음악을 십분 즐기면 족하다.
쇼케이스를 본 후 여운이 한가득이던 찰나 운 좋게도 연이은 콘서트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콘서트장에서 그는 더 열정적이었다. 팬들은 열광했다. 무엇보다 콘서트장에서 만난 팬층의 대다수가 신중년층이었던 점은 매우 의외였다. 그의 음악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졌고 진지한지 팬층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밴드를 좋아하게 된 내게 이승윤의 역성(易聲, 3집 타이틀)은 내 안에 혁명을 일으켰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청년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록 밴드에 덕질을 시작해 볼까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아직은 샤이팬이지만 언젠가 이승윤의 노래 가사 말을 가지고 한 편씩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