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덜 들었다는 건

by 삼분카레

✍철이 덜 들었다는 건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가을을 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가을 노래, 가을여행 등 ’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가을을 얘기하고 가을에 흠뻑 빠지라고 할 것이다.

'가을'에 우리가 그토록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이유가 뭘까?

여름내 헤벌레 무장해제 되었던 몸과 마음에 단단히 군기라도 드는 것일까.

헐거워졌던 땀샘들이 서둘러 빗장을 걸어 잠그고, 허덕이며 해야 할 일만 하기에도 힘겨웠던 마음에 여유공간이 생기기라도 하는 것인가.

흔히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 한다. 결실을 거둔다는 건 어쩐지 풍요로움 끝에 오는 슬쓸함을 더 크게 짐작케 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계절을 인생의 나이에 비유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그렇게 따지면 봄여름이 인생의 전반부였다면 가을겨울은 인생후반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과 쓸쓸한 겨울이 인생 후반부에 겪게 되는 허무함과 부질없음과 같은 단어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며 호들갑이다.


계절이야 3월 봄, 8월의 여름을 지나 10월의 가을 그리고 12월의 겨울이 오듯 선형적인 수순에 기인한다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 나이와 비례하여 파종과 수확이 이루어지던가.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30대에 직장을 얻어 40대에 가장 많은 일을 하고 50대면 안정을 찾고 7,80대면 휴식을 취하는 패턴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내가 아는 분은 인생 70에 월 억대의 매출을 올려 자신의 성공에 얼떨떨 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아는 샘은 40에 반려자를 만나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가장 측근이자 본인인 나는 인생 중반부쯤에 글쟁이 흉내를 내보려는 야망을 갖기도 하니, 참으로 대중잡기 힘든 것이 인생이다.

온실이 없던 시대야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었고, 겨울은 기나긴 휴식의 계절이었음이 명징하다. 봄이 파종의 계절이고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제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다. 여름 과일이던 딸기와 참외는 이제 겨울 과일이 되었다.

불변의 법칙일 것 같았던 자연의 섭리마저도 인간의 계획된 의도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자연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이 주체인 우리의 인생은 어떻겠는가.

나는 내 인생을 단순히 숫자에 연연하여 결실을 운운하는 가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숫자로 보면 이제 인생 후반부를 의미하는 가을에 접어든 나이이지만 난 아직 내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었다. 아직도 나는 봄 아니면 여름 어디쯤에서 열심히 헤매고 있는 중이고 헤매다가 어떤 한 지점에 도달할 때쯤이면 그때가 나의 가을의 시작일 것이다. 결실이 늦은 만큼 내 인생의 봄과 여름이 그만큼 길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뭐 그리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걸 두고 철이 덜 들었다고 한다지. 나이 먹어갈수록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이 좋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