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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Feb 11. 2023

그건 곧 남은 생의 내가 될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기로 작정한지 26일째 아직은 순조로운 항해 중이다. 오늘이 26번째지만 내게 일기쓰기는 그다지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이는 작년에 도전했던 100일 글쓰기와 그 이후로도 나름의 끄적이는 행위를 꾸준히 해 온 덕이다.


100일 글쓰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백일동안 시, 수필, 칼럼, 편지, 책리뷰 등 각종 형식을 빌어서 썼었다. 써서 멤버들과 서로 공유를 하고 댓글을 달아주는 형식이어서 최대한 완성도 있는 글을 올리려 애썼다. 그런 작업을 한 번 하고 나니 글감 찾는 일이 한 층 수월해졌다.


일기쓰기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 없이 쓰지만 사실 나의 최측근에서 나의 기록을 하니 당일 나의 가장 지배적인 생각을 적게 된다. 쭉 훓어보는 와중  재미난 것도 하나 발견했다. 

25편의 일기 중 오디오북에 대한 이야기 혹은 오디오북이라는 단어가 한 번이라도 들어간 일기가 5편이나 되었다. 

내글빛의 <일과 삶>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책 함께 읽는 모임을 시작했고, 작가님으로부터 오디오북을 소개받고 부터는 2주 동안 오디오북을 5권을 완독했다. 한마디로 오디오북 매력에 푹 빠져 유영 중이다. 


오디오북이라는 신문물을 늦게나마 접하게 된 과정이나 소감들을 적은 일기들을 추려 모으니 그것으로 또 하나의 글감이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기를 쓰면 좋은 점들을 무수히 들어왔지만 실행을 할 만큼 나를 동요시키지는 못했었다. 쓰기 시작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일기의 커다란 장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 셈이다. 일기를 계속 써야할 필요성을 느꼈고 목적 또한 분명해졌다. 일기라는 것이 단순히 그날의 기분, 일 따위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을 위한 장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자원의 발견이다. 


23.1.24

제목: 전자책을 넘어 오디오북으로 눈길을

새해는 독서를 좀 더 치밀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지류만을 고집했었는데 전자책으로 보는 책의 맛도 나쁘지 않았다. 전자책이 지류에 비해 속도감이 있었다. 어느새 한 권이 뚝딱 읽혀졌다. 무엇보다 지류책은 글씨가 작아 힘들었는데 전자책은 그런 단점을 보안해 주었다. 


내친 김에 어제 탭을 하나 주문했다. 대중교통이든 여행을 다닐 때에도 노트북은 너무 무거워 힘들었다. 독서용으로 주로 사용하면서 집을 떠날 때는 글을 쓰는 도구로도 활용을 할 것이다. (...) 새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오디오북이다. 몇 번 이명을 앓기도 했던 적이 있어 되도록 이어폰을 멀리해왔다. 산책을 할 때 음악조차 듣지 않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산책하는 시간만큼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 하고 머리를 식히는 시간으로 활용해 온 것이 오랫동안 지켜온 나의 루틴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고 새로운 경험 오디오북과의 만남이 자꾸 끌린다.


23.1.27

제목: 전자책과 오디오북 중 어느 것?

연초라 어깨에 힘을 너무 줬었나보다. 오늘은 오십견 부근이 뻐근하고 피로가 확 몰려온다. 이것저것 하고자하는 일들을 많이 벌려둔 채 아직 정리가 안 돼서이다. 나는 결정 장애가 있는 걸까. 생각을 좀 오래 한 후 결정하는 습성이 있어 때론 몹시 번거롭다. 결정을 빨리 빨리하고 그 다음 일에 집중하면 일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을 텐데. 잘 안 된다.


며칠 째 전화영어를 선정하고 결재하는 부분에서 그랬다. 밀리의 서재와 윌라 구독 구매권을 두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자도서는 밀리의 서재가, 오디오북은 윌라가 적절하다는 소개를 받았다. 두개를 한꺼번에 구독하려니 괜한 욕심 부리다 스트레스 가중 될까하는 염려로 둘 중 하나만 먼저 시작하려고 한다. 


두 가지를 무료이용권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용해 보니 각각의 장단점이 확연하다. 오디오 북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잠자기 전, 설거지 할 때, 산책할 때 등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이어폰을 꽂고 들으니 꽤 유용하게 시간 활용이 되는 것 같아 좋다. 성우의 목소리로 들으니 소설분야는 드라마를 보듯 감정이입이 잘 된다. 하지만 눈으로 읽을 때보다 집중은 잘 안 된다. 눈과 손이 딴 곳에 집중하는 사이 귀만 책을 허락하다보니 아무래도 집중력이 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메모를 하고 싶거나 좋은 문구를 만났을 때 메모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전자책은 익히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여러 권 읽었던 터라 장점들을 잘 알고 있다. 스텐드가 없는 곳에서도 독서가 가능하고, 지류로 읽는 것만큼 집중도가 좋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기 때문에 언제든지 메모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오디오북만큼 짬을 잘 활용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며칠 더 이용해 보고 결정을 내려야겠다. 


23.2.7

제목: 일득일실(一得一失)

거의 매일 밤 지남철에 이끌리듯 공원으로 향한다. 가장 큰 원을 그리며 걷는 코스는 나에게 금보다 중하다는 시간 15분을 지불하라고 한다. 네 바퀴를 도는 동안 흔쾌히 60분을 지불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걷지 않으면 따르는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에 나가는 것이지 사실 그 일이 엄청 즐거워서 하는 것은 아니다. 


2주일 전까지만 해도 걷는 내내 마음속으로 몇 바퀴가 남았는지 지겹도록 셈을 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배회하다 때로는 글감이 번득이기도 하는 횡재를 맛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잡생각들과 따분함으로 바퀴수를 세는 데에만 온 정신이 팔릴 때도 있다.

그럴지언정 사실 그 시간은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고 지겨움과 맞바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오디오북 정기구독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뇌는 쉬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멍해 있거나 따분함을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간마저 이어폰의 침해를 받는데 무기력해져 버렸다. 

소설을 들으면서 걷는 시간은 드라마를 보는 것만큼 재미가 있다. 성우들의 실감나는 대사처리는 몰입을 주도하고, 나레이션의 정갈한 목소리는 작가의 글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특히, 공원 산책길에서 듣는 소설책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생생하고 집중도가 높다. 캄캄한 밤에는 오조지 청력에만 의존할 수 있어 2주 만에 오디오북으로만 5권을 읽었다. 이전의 독서량에 비하면 어마어마하다. 짬을 이용한 시간들은 이렇게 큰 덩어리의 결과물을 안겨주었다. 이젠 달밤의 약간 지루한 운동이 매일 밤 마실 나가는 즐거움으로 변했다.


일득일실이라 했거늘, 재미를 얻으니 무념과 멍 때리는 시간을 잃은 듯하다. 뭐든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는데, 아무리 오디오북이 좋다지만 적절하게 배분을 해서 뇌에도 여가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월,수,금은 오디오북을 화,목,토는 멍때리기로 갈까? 두 바퀴는 그냥, 두 바퀴는 들으면서 돌까?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겠다.



오디오북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이고 고민을 하고 그렇게 결정을 했구나하고, 새삼스럽지 않지만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일기를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의 하루하루의 지배적인 생각들, 그 생각들이 모여 한 달의 내가 되고 일 년의 내가 된다. 이후에도 난 계속해서 쓴 일기를 월별 카테고리로 묶어 저장해 둘 것이다. 시간 흐름에 따라 갖는 고민들과 내 생활의 변천사를 기록하게 되겠지. 그렇게 해서 그 일기는 나의 역사책이 되고 그건 곧 남은 생의 내가 될 것이다. 일기 쓰기는 참 잘 한 일이며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 일 중 으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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