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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Oct 11. 2020

시간의 세례를 받은 사이

#07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 하루키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은 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인생은 짧으니까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는 '시간의 세례'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례는 헬라어 '밥티스마'에서 유래했다. '깨끗하게 한다'의 뜻인 '밥티조'에서 온 말로 곧 모세의 정결 예법에서도 그 시작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물을 사용하여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세례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육체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시간의 세례'는 '세례'의 주체를 시간으로 두었다. 시각의 세례가 아니라 시간의 세례인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세례가 유지되었고, 각 시대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시간의 세례라고 표현한 것 같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시간의 세례를 받을 만한 것 중 꼽을 만한 건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평소 생각해왔던 '짝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짝사랑이 있듯이 짝우정도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이 나와의 우정을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열렬히 상대를 믿고 사랑한다. 이 우정은 짝사랑보다 훨씬 얕고 가벼운 정도의 반응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보통 상대의 존재만으로 행복하다. 나는 자주 동생에게 'A가 날 친하게 생각하는 거와 상관없이 나는 그 애가 너무 좋아'라고 여러 번 말했다.


A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소위 말하는 '인싸'인 친구였다. 감히 내가 베스트 프랜드를 주장하지 않았다. 지금은 별로 의미 없지만 그때는 친구도 정해진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A는 착하다기보다 진솔하고, 상냥하고, 남을 욕하지 않았다. 아마 누구나 그에게 하소연 한 번쯤 했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루는 B에 대해 험담을 그렇게 했는데, 다음날 A와 B가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걸 봤다. 그날 이후로 더 우정에 빠졌다. A는 나의 소유가 아니기에 더 반짝였다. 깊고 얕다고 말하기 애매한 우리는 14년이라는 시간의 세례를 받았다. 


요즘에 새롭게 시간의 세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글쓰기'라는 공통의 관심사에 따라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600자의 글을 공유하고, 피드백한다. 주로 응원하고 감정이입도 잘한다. 서로가 성장하는 새 소식도 자주 공유하고 격하게 반응해준다. 어떤 사건이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할 때면 그들은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준다. 좋은 일은 개인 SNS에서 내 일인 양 자랑한다. 타인의 성공을 자랑하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난 점점 이 우정에 더 깊게 빠져 허우적댈 것 같다.  


한 번은 멤버 중 한 명이 책을 출간했는데, 우리들은 책을 구입하기도 하고, 인근 공공도서관의 신청도서를 이 책을 요청했다. 텀블벅에서 포스터를 펀딩 하던 멤버에게 후원도 한다. 종종 어떤 멤버의 다음 주 글을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고, 글에서 나타난 근황을 걱정한다. 


우리는 '시간의 세례'를 받고 있다.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단 하나라도 그것을 진심으로 나눌만한 사이라면 오래오래 짝우정 하고 싶다. 


인생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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