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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28. 2021

지난해의 의미

2020년에 남은 기억

2020년은 반드시 기록해두고 싶은 만큼 많은 일이 펼쳐졌다. 사소한 일은 많았을 텐데 기억 남는 건 몇 개 안된다. 그래서 2021년은 '사소한 일에 분개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작년은 주로 불안전한 내 삶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한없는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의 주어진 삶에서 누려도 다 못 누릴 인생이었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갖는 데에는 책, 강연, 영상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가장 큰 영감은 역시 사람이었다. 알던 사람에게 새로운 눈빛을 발견하게 될 때, 나도 새로워지고 상대도 다른 사람 같았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우주가 온다는 말이 자주 떠올랐다. 평생을 알고 지낸 부모님, 가족이라도 모른다고 할 만큼 모르는 나였다.


2020년 하던 거나 꾸준히 하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안 하던 주식, 채식, 필라테스에 기웃기웃.)

2021년에는 2020년에 하던 거나 꾸준히...


채소를 좋아한다고

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이제 싫다


요리는 아니고 그냥 생식 수준의 식사

취향 공동체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평소 채소를 좋아하지만 고기는 어쩌다 한 번씩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 다큐 '카우스피라시'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을 본 이후로 반드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발견했다. 비건에 대한 관심은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아무도 없지만 온라인의 세계에 들어오면 내가 팔로우한 많은 비건 지향인들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외롭지 않게 취향을 지속할 수 있고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2020년에는 자주 먹지 않던 배달음식을 거의 시켜먹지 않았다. 배민이 그렇게 잘 나간다는데 나는 어플도 없다. 그럼에도 유명한 닭강정은 한번 시켜먹었다. 가족모임에서는 고기 굽는 자리에서 상추에 밥만 싸 먹은 적도 있었다. 친척들이 많아서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만 있는 모임에서 백숙이 식탁에 차려졌을 때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이 맛있게 먹어버리는 이중성을 마주해야 했다.


2021년에는 직장 내 점심메뉴에 대해 의견을 좀 더 어필할 생각이다. 특히 올해 대부분의 인력이 교체될 예정인데, 그 시기에 도시락을 따고 다닌다던지 도시락 모임을 만들던지 시도할 생각이다. 점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정체성을 견고하게 만들고, 고기 없는 반찬을 만들어가고 싶다. 고기 없이도 식사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도 설득해야 한다.


내 관심은 소중하니까

비건 베이킹과 드립 커피를 배웠다


먼저 10주 동안 베이킹을 배웠다. 10주 동안 한번 있을 스콘을 직접 만들 생각에 설렜다. 사실 스콘 하나만 보고 강좌를 신청했다. 내 나름대로의 강의 목표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수업은 재미없고, 강사는 까칠했지만 몸을 움직이고 집중하고 시간을 견디며 결과물이 나오는 게 재밌었다.


많은 양이 나오진 않았지만 학원에서 제공한 재료는 누굴 주기에 미안한 정도의 재료였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어주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했다. 비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는 재료 하나하나가 신경 쓰여서 나중에 제대로 비건 베이킹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12월에 끝난 이후로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비싸게 주고 사 먹을 법한 음식이다.


충분히 게을렀다가 하고 싶을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요리책도 만들 예정이다. 건강한 빵을 구우면 가져다  꼬맹이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기도 했다.  아기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 그 귀여운 어린아이들을 다 챙기려면 하루를 다 쓸 것 같은데, 맛있게 먹을 생각하니 또 귀엽고.. 행복하다.


원데이 클래스로 드립 커피를 배웠다. 평소 좋아하던 카페는 거리가 멀었고, 그 카페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직접 매일매일 내려먹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2시간 배운 이후로 거의 매일 출근 전에 커피를 내린다. 2020년 배운 일 중에 가장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배우기만 좋아해서 나 스스로 시도쟁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많이 시도하는 것 중에 몇 개는 쓸만한 일들을 건진다. 이 맛에 배우는 거지 뭐.. 잘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하려고 배우는 거다. 외국 출장 가있는 친구에게 10만 원이 훌쩍 넘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저울을 주문했다. 얘는 왜 입국했다는 소식이 없지? 저울은 안 사 왔나?


운동에 가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아시는지


사무직 인간의 신체적 결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20년 초 좌골신경통으로 골머리를 앓던 나는 필라테스 1:1을 호기롭게 결제했다. 호흡부터 배 어디에 힘을 주는지도 모르다가 두 달을 쯤 지나자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필라테스 전에는 어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음악 선생님이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처럼 필라테스 원장님이 좋아서 인생 운동으로 정했다. 그의 태도에서 일에 대한 직업적 자부심과 몸에 대한 편견 없는 관심이 좋았다. 그는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실제로 균형 잡힌 몸을 가지고 있고, 내 몸에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발견해내는 섬세함을 지녔다. 할 말만 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늘 1시간을 최대치로 사용하도록 도와줬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늘 아깝지 않았다.


올해에는  3회를 하고 싶었으나 비어있는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 혼자  해야 한다. 나만  운동 영상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운동을 하기만 하면 반드시 전보다 기분이 나아진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기분이  좋아도   이유가 없어진다. 좋으면 좋아서 하고 싶고 나쁘면 나쁘니까 해야 한다.


쓰다 보니 여기저기 쓸 일이 많아졌다

나는 점점 잘 쓸 것이다 (주문을.. 걸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브런치에 작가로 승인된 이후로 그동안 모아둔 글을 와르르 쏟아냈다. 구독자도 별로 없으니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글쓰기 모임에 숨겨뒀던 더 진솔한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었는데, 그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발간하고 관심을 받게 되자 조회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악플도 생겼다. 악플에 대한 마음가짐은 '50만 명이 보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세세하게 밝혀두었다.


그 이후로도 4번 정도 글이 포털 메인에 실렸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에 대중들도 관심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관심에 중독되어 점점 더 클릭할만한 제목을 고민했다. 글을 소재만 떠오르면 줄줄 써지는 편인데 제목을 더 오래 생각한 적도 있다. 평소 건조하고 담백함, 그리고 약간은 모호해서 상상하는 듯한 제목을 좋아하지만 주목받은 제목은 글의 주제를 명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계간지에 글을 기고하던 곳의 사정으로 내가 맡은 지면의 분량이 늘었다. 이건 2021년 편집회의 때 부담스럽다고 조정을 원한다고 했으나, 늘어난 분량이 좋았다며 그대로 유지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 글쓰기가 힘들다기보다 그 글이 보이는 일에 압박감이 있었는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 자신감이 생겨서 알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찾기 힘들어서 그냥 말한 거일 수도 있지만, 정말 별로 였다면 맡기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집중했다. 심지어 2021년에는 그 계간지의 편집위원장.. 어색한 타이틀을 가지게 됐다. 편집위원 모두가 책임감 있게 일하고, 회의 참석률도 좋아서 그 감투가 막연히 버겁게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어려우면 언제든 SOS 예정.


비 학술적 학술제, 토론 중


'마감의 기쁨과 슬픔' 모임을 통해 글을 1년간 꾸준히 썼다. 우리의 우정은 '신인류의 우정'이라고 부를 만큼 새로웠고, 늘 재정립되는 것 같다. 작년에 멤버들 중 누군가는 원하던 곳에 취업을 하고, 글을 모아 책을 내고, 기사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마기슬'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나도 뭔가를 이루고 마이크가 주어진다면 마기슬을 꺼내보고 싶다. 그 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학술제에 초대받아 공통 글감으로 글쓰기를 진행한 것도 의미 있었다.


별생각 없이 티브이를 보는 것처럼 별 생각없이 읽는 편

SNS 중독자 독서습관 만들기


재작년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에 책을 읽고 난 서평을 짧게 남기고 있다. 사실 나의 본계정에 집착하다가 중독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웠다.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고 삶 전체를 전시하기보다 콩알만 한 도움이 되는 쪽이 뭘까 고민하다가 서평만 남기기로 했다. 뭐 나름의 포트폴리오가 될지 누가 알겠어. 처음엔 기억에 날만한 책만 읽다가 요즘은 재미없는 책도 남긴다.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이 별로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간혹 부정적인 서평을 본 출판사들이 소송을 건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들리는데, 나는 오히려 그 작가가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했다. 여론을 조작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출판사가 있어서 더더욱 베셀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작가들은 예술 가고 출판사는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던 출판사의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자주 떨어졌었고, 생각지 못한 출판사에서는 담당자가 워낙 일을 잘해서 애착을 갖게 됐다. 별로인 책들도 많았는데 주로 좋았다. 덕분에 평소 읽지 않은 예술이나 마케팅, 자기 계발 분야의 책도 읽었다. 이 서평단은 8개월이나 진행됐는데 책이 보통 일주일에 한 권씩 와서, 매주 선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미리 정해놓고 도서관에 갑니다. 최대한 빌리는 편이고 재미없으면 안 읽어요. 억지로 하다가 독서습관 오래 못 갈 것 같아서요.

시립도서관도 자주 애용했다. 최대 10권까지 책을 비릴 수 있어서 자주 연체되고, 대출정지 먹고, 그렇게 풀리기만 하면 다시 10권을 빌렸다가. 대출정지 기간을 못 기다릴 때면 동생 회원증을 빌려서 또 10권을 빌렸다. 올해에는 외삼촌한테 중고차를 선물 받아서 책을 무겁게 가방에 들고 다니지 않아서 좋았다. 그 차를 다시 동생이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게 돼서 차가 없는 거나 다름없지만, 운전면허 갱신 전에 운전할 일이 생겨서 어른이 된한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며칠 전에 사고를 냈다.  


나는 차 사고 안 낼 줄 알았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 짧은 운명


차가 생기니까 오히려 차에 대한 관심이 끊겼다. 차가 생기기 전에는 차량 가격, 연비, 디자인 디자인 디자인에만 관심이 갔었는데, 이제 그보다 차 내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지만 그러질 않는다. 그러나 일주일 전에 사고를 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진짜 부들부들 떨렸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크게 욕먹지 않고 해결됐다. 다친 사람은 없었고, 상대 차량만 수리해야 해서 보험 처리하고 끝났다. 보험회사가 모든 걸 처리해줘서 그 이후로 상대 차주는 소통할 일이 없었지만, 차량 수리가 끝날 때까지 신경 쓰였다. 그분은 차량 잘 받았다며, 이제 안심하라는 마지막 문자까지 남겨주셨다. 연초에 큰 사고를 냈으니 앞으로 더욱 안전 운전할 생각이다. 친구가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냐며 무서워할 일은 아니라고 다독였다. 다른 부정적인 일도 '사람이 다친 게 아니다'라는 식을 비교하며 안심하고 싶다. 누군가를 다치게만 하지 않으면 뭐든 해도 될 것 같다.


앞서가는 동학 개미일까, 초심자의 행운일까


주식으로 벌어서 차량 유지비로 날아가고 있다.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차를 버리라고 했는데.. 차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다음 차 뭐살지 벌써부터 행복하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니까 이미 주식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보인다. 억 단위로 주식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겸손하고, 확신에 찬 말을 안 한다. 배울 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조언 찾아 그만 헤매고 얼마 전부터 혼자 공부하고 있다. 질문도 아는 사람이 한다고 뭘 알아야... 근데 뭐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모르면서 투자하는 금액만 0을 더 붙였다. 나는 이런 내가 전혀 무모한 것 같지 않고 약간은 늦었고, 늦은 김에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싶다. 왠지 잘될 것 같은 투자심리도 엄청 위험하다고 하던데.. 근데 난 지금 위험하지 않다. 고 느낀다.

이렇게 오르는 주식을 왜 나는 0.004주만 가지고 있을까요?

나만의 철칙을 하나 둘 세우고 있다. 저번 달부터 시작한 자산배분을 당장 이번 달부터 지키고 싶지 않다. 그냥 잘 나가는 애플에 몽땅 넣고 싶다. 테슬라 주식은 콩알만큼 가지고 있다가 100%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추가로 매수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나.. 하늘의 테슬라인 이항은 이미 늦은 것 기분. 이런 근거 없는 추론을 하는 내가 비참해서 회계 책을 샀다.


2021년은 주식을 포함해서 다양한 선택에 근거 기반한 결정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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