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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Dec 29. 2020

자기혐오의 끝을 보기

인간 본성의 법칙 / 로버트 C.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폭력적인 사람은 두 가지로 행동을 표출시키는데 하나는 일탈, 다른 하나는 자기혐오"라고 말했다. 일탈은 마약과 지나친 음주, 성매매 등 일반적으로 사회가 비난하는 것이다.* 나는 자기혐오에 중독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나를 자꾸 낮추고 심지어 보잘것없어서 무의미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속내를 아무에게도 들키기 싫어서 정반대로 행동하고 보여주려고 애쓴다. 내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엔 꽤 계획적이고,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분주함을 즐기는 것 같은 또 다른 내 모습이 만들어져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이런 표출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자기혐오가 폭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

종종 물건을 부숴버리고 싶고, 정리된 것들을 헤집어 놓고, 하얀 벽지에 낙서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실천으로 옮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차라리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옮겨서라고 일탈을 해서 자기혐오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너무 극단적인 '혐오'라는 말

글쓰기 동료 중 하나가 '내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말들'에서 '극혐'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혐오한다는 말을 쓰지 않아도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수 있으며 극혐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극단적이라고 적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한참 그 말이 유행처럼 돌았을 때 '으 극혐~'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 말을 사용하면 호불호가 있고, 자기주장이 있는 똑똑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말 자체가 극단적이라 '혐오'라는 단어 하나로 대상을 더 이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않으며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다.


그는 "표현의 대상이 비판받아야 할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약자에게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집었다. 자기혐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쉽게 혐오할 수 있는 대상, 가장 약해 보이는 존재가 나라는 끔찍한 생각도 든다. 


왜 나를 미워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인생을 자기혐오만 하고 살 수 없으니까 꼭 벗어나야 했다. 나를 그만 미워하기 위해 그 생각의 끝을 미치도록 쫒아 가봤다. 그 끝에 실체가 뭔지 알고, 혐오할만한 이유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나를 혐오하는 큰 감정 안에는 더 작은 이유들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정 상황의 감정이나 행동, 외적인 기준 등. 그중에 내가 짚을 수 있는 건 '생각을 오래 하는 점'이다. 평소 지독히 싫어하는 부분이었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내가 또 생각에 빠졌구나'하는 순간 또 혐오하게 된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 싫어했다. 그 당시는 단순해 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지냈다. 영상, 책, 강연을 찾을 때에도 생각을 멈추는 법, 비우는 삶, 단순하게 생각하기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며, 그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결코 될 수 없는 존재를 선망만 하면서 오랜 시간을 '또' 생각했다......(이쯤 되니 생각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읽는 분들이 지겨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단점을 분류도 해본다.

개인적인 '많이 생각하기'의 장단점


하다 하다 지쳐버렸다.

그냥 생각을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런 생각을 잘 모아보고 싶었다. 평소에 쓰고, 적고,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 생각하면서 메모하는 편인데 메모를 효율적으로 해서 수많은 생각을 압축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걷어내야 했다. 이 과정도 아주 느리고, 천천히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정리를 어떤 펜으로, 어떤 노트에, 어떤 스케줄러를 사용할 지부터가 또 생각의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준비물이 다 갖춰지더라도 오늘의 정리가 내일 뒤집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도 끝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끝까지 적어내려 갔다. 이왕 생각에 집착해버린 거 어디까지, 뭐하나 끝을 보긴 해야 한다. 어떤 날을 생각을 정리하는데만 3시간을 메모장을 펼쳐서 집중했다. 내가 이 정도로 몰입하면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지 혼란스럽다. 


끊임없이 적어가는 방식을 지속하다 보니 습관이 됐다. 생각 하나로 뭉뜽거릴 일이 아니었다. 무언갈 계획하고, 미루고, 실천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맥락 없는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한 생각들을 정리해나가고 있었다고 믿었다.



내 생각들이 의미 있어지자 생각을 더 잘 정리하고 싶었다. 그동안 실물 다이어리로 일정과 아이디어, 글감을 적어나갔었다. 수기로 적는 것 글을 '적어 내려 가는 맛'이 있지만 효율성과 검색에 매우 취약했다.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 딱 다이어리만 한 아이패드를 구매했고, 일정관리는 여기서 하고 있다. 1년 정도 지났는데 만족도가 아이폰, 맥북보다 높다. 굿 노트와 원노트만 쓰다가 최근에는 노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료들을 마주치면서 배우고 싶어 졌다. 반드시 내 생각의 날개를 펼쳐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를 혐오하지 않기 위해서 늘 메모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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