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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Nov 30. 2021

커피와의 추억

좋아하는 것들

어릴  기억을 떠올리면 씁쓸한 사건이   있다.


열여덟 살인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는 소위 말하는 깡시골인데 20살 이전까지는 카페를 가본 기억이 없다.  종종 명절에 친척집에 가면 가끔? 아무튼 매우 익숙하지 않은 장소다. 당시 고등학교 인근에는 카페가 있긴 했는데 일주일 용돈 만원을 가지고 커피를 사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캔커피도 안 좋아했고 더위사냥이 좋았다. 그러던 순수한 시절에 찬물을 끼얹은 선생님이 있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들었다.  선생님은 대뜸 커피 이야기로 흘러가서는 '커피 종류를 니들이 아냐? 캐러멜 마끼아또나 알겠지'라고 말했다. 진짜로 캐러멜 마끼아또 밖에 몰라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게 뭔데 그걸로 우리 앞에서 유세 떠는지. 커피 그게 뭔데? 없어도 잘만 살았구먼.


신입생이 돼서 처음 카페에 갔는데 계산대 앞에서 어리바리한 나를 보며 친구는 커피 종류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건 달지 않고, 이건 크림이 올라갔고, 이건 우유와 섞였어'라고 말하는데 내가 아는 건 애석하게도 캐러멜 아끼또 뿐. 아메리카노를 마셔보겠다고 주문했으나 한 모금을 들이키자마자 후회했다. 담배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커피 맛이 왜이러는지 비교할 수가 없어서 촌스러운 내 입맛이 초라했다. 그 멋없는 내 모습을 감추려고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잘 주문했다. 아직도 카페베네의 아메리카노 맛이 잊히지 않는다.


커피 종류를 어느 정도 알고 나니 이제 카페 브랜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때 한창 카페베네, 스타벅스, 이디야, 엔제리너스 같은 가맹점의 점포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였다. 학교 근처에 신도시가 조성되어 새로 오픈한 매장에서 컵을 받으러 투어도 다녔다. 1학년 때에 서울로 대학교에 간 친구와 미니홈피에서 댓글을 남기던 중에, 스타벅스가 보이는 사진에 '오! 스타벅스 안 가봤는데~~'어쩌고 하는 댓글을 달았더니, 여긴 스타벅스도 없냐며 놀라는(놀리는) 댓글이 달렸다. '몇 군데 있는데 내가 안 간 건데.. '라고 말하기는 또 구차해서 내버려두었다.


그때 한참 '서울엔 있는데 여긴 없냐, 있냐'라는 유리한 대화가 잦았다. 우리 모두 여러 도시에서 살다가 대학이라는 집 단안으로 온 거라 고향이 그립기도 했겠고, 딱히 할 말도 없었겠지. 그런 말을 듣고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진짜 나의 고향을 모르기 때문에 불쌍게도 생각했다. 해안도로에서 보는 노을으나,  칠흑 같은 어둠에 빛나는 별, 하교 후 매일 코피 나게 놀았던 기분 같은 건 설명할 수가 없다.   



30대가 된 지금은 누구보다 커피를 즐긴다. 좋아하는 맛도 알고, 카페 사장님과 한두 마디 대화할 정도로 친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허락된 커피 향유 시간은 겨우 오전뿐이다. 최대한 늘려서 오후 2시 전. 그 시간 이후로 마시면 무조건 뜬 눈으로 지새워하는 밤이 괴로워진다. 커피를 좋아하면서 카페인에 아주 취약하다. 그래서 더 커피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 안에서 최상의 커피를 맛보아야 한다는 마음 같은 게 있다. 출근 전에는 보통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서 가져간다. 습관이라기보다 의식이다. 커피 향이 진하게 집 안을 가득 채운 후 찰랑찰랑 얼음 소리가 들리는 텀블러를 들고 현관을 나올 때 묘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오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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