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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Dec 22. 2021

일 년간 솔로인 소감

2021년을 마치는 글 - 1

20살 이후로 연애를 안 하고 지나왔던 해가 없던 것 같다. 한두 달 만나더라도 1년 사이에는 꼭 누군가를 남자 친구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남자를 막지 않는 편이고, 마음이 한 60프로 정도 끌리면 일단 만나고 보자는 주의였다. 근데 그런 방식으로 매번 만나니까 감정이 깊어지거나 유지도 힘들었다. 만나다 보면 점점 좋아지겠지 해서 좋아진 적보다 실망과  안 좋아한다는 확신만 들었다. 웬만하면 만나기보다 웬만하면 안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성인이 된 후로 처음 솔로로 지냈다. 결과적으로 어느 해보다 정신 상태가 맑고 밝고 발전적이었고 다시 생각해도 잘했다.


1. 왜 안 했나

2. 안 하고 뭐했나

3. 그래서 어땠나


왜 안 했나

20대에는 '각자의 성장을 돕는 연애'를 꿈꿨다. 이제는 '내 성장을 방해하지만 않으면'된다고 기대를 낮췄다. 기준을 낮췄다고 생각하는데도 관계가 순탄하지 않았다. 뭐가 단단히 문제가 있었다. 헤어질 남자들을 골라 만난 게 아니다. 그러나 이별하고 떠올리면 헤어지길 잘 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들은 한국 남자 전체로 일반화시키기 쉬웠다. 싸잡아 욕하면 연애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소개팅을 세 번 정도 했다. 가볍게 만나보라는 운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만났지만 그날따라 화장과 옷차림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헛헛한 마음에 귀가할 때면 공허함이 증폭된다. 사실 연애로 그 마음을 위로하려 했지만 답은 이게 아니라는 걸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막연하면서 확신에 찬 나에 대한 물음을 줄 곳 외면하며 살았다. 연애가 목적이 아닌, 그보다 더 중요한 내 인생의 과업을 찾고 싶었다.


작년에 헤어지고 나서는 이제 더이상 연애를 떠올리기 조차 싫었다. 헛헛한 마음, 외로운 마음 같은 인간이 느껴야 할 본질적인 감정을 연애로 해소된다는 생각이 멍청한 짓이다. 올해는 정말 스스로 혼자여도 충분한 기분이 절실했다. 자의 반 타의 반 1년 간 안 하다 보니 생각보다 문제없는 일상을 보냈다. 오히려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집안에 피아노, 책, 재봉틀, 수영가방, 커피 도구 들을 보더니 할 게 이렇게 많으면 결혼 못한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안 하고 뭐했나

연애 안 해도 괜찮았던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만날 사람들이 많다. 좋아하는 지인을 모아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취미로 하던 도예수업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 주말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매주 새로운 사람들과도 한 시간 반을 오롯이 붙어 있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기운이 충족된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소수와 만나길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코로나 시국의 상황도 별다른 타격감이 없었다.


벌려놓은 일들도 책임져야 한다. 공방 사장님의 추천으로 원데이 클래스도 주말마다 열었다. 사이드잡으로 하던 소소한 원고료도 더 열심히 쓰기 위해 주말마다 취재를 다녔다. 혼자 가기 뻘쭘한 곳도 취재 이유가 생겼으니 당당한 기분으로 누비고 다닌다. 최근엔 밤이 빨리 찾아와서 혼자 돌아다닐 때가 무섭긴 했다. 회사 밖에서는 완전히 성과 제라 일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 사이사이 수영도 재밌게 했다. 몇 년째 접영도 못하고 뭐하는 짓인가 싶다. 휴양지 가서 버터플라이 할 건 아니어도 내가 접영 할 수 있다는 그 뿌듯한 마음이 언제 생길까. 끈질기게 어렵다. 수영으로 마무리 짓는 하루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 쏟아진다. 전에는 잠을 많으면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후회했다면 요즘엔 많이 자서 상쾌하고 만다. 단순해야 할 일에 단순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어땠나

그동안 만났던 여러 명의 지독히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한때 가깝게 지낸 시간이 좋은 추억 또는 강열한 트라우마로 엉켜있다. 게다가 트라우마는 글감으로도 잘 연결됐으니 결과적으로 모두 쓸만한 기억이다.


연애를 안 하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쪼금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띈다. 당장 누구와 연애할 맘이 없으니 사심 없고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잘생긴 사람을 보면 한번 더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기준의 잘생김이 너무 낮다고 하는 친구들의 조언에도 나는 나만의 잘생긴 기준이 참 일관된 편이다.


혼자 있을 때 언제 즐거운지를 정확히 알아가고 있다. 재즈보다는 클래식을 백배쯤 더 좋아하고, 인스타그램을 핸드폰에서 지워도 세상이 잘 살아지고, 같이 일하던 좋은 동료들이 떠나도 더 좋은 사람이 오는 행운도 있었다. 친한 친구가 무시무시한 병에 아파했을 때 더 소중함을 알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배웠다. 물건을 살 때 당근 마켓에서 먼저 알아보는 알뜰함도 재미있다. 주식도 빠질 수 없다. 돈을 더 모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동시에 앞으로의 재테크 공부에도 열을 올릴 예정.


잘은 모르겠고, 아무튼 이렇게 살다 보면 어떤 사람과 잘 맞을지도 확신이 생기지 않을까. 이 수고로운 작업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나는 흡수를 잘해서 누구든 잘 맞춰주는 편이다. 그래서 연애할 때 나답지 못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잘 보이기 위한 가면, 지금 상황만 모면하고 다시 안 볼 사이에 쓰는 가면 등. 가면도 기꺼운 마음으로 바꿔 쓰고 싶다. 그러고보면 연애를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서 신중하고 싶어서 안했다. 올해는 나랑 연애하고 친해지고 그걸로도 충분했던 날을 보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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