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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11. 2022

왜 가위에 눌릴까

잠으로 도피하는 성향

가위눌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수면장애가 의학적인 용어로는 수면 마비를 말합니다. 수면 마비는 수면 시작 혹은 수면 말미에, 흔히는 꿈꾸는 수면(REM sleep) 직후에, 골격근의 마비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고려대병원 홈페이지 질병정보)


고등학생 때 기숙사생이었던 나는 일요일 저녁이 싫으면서도 기다려졌다. 공부는 싫었는데,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는 건 늘 재밌었다. 특히 일요일 밤에 각자 집에서 간식거리를 바리바리 싸오면 따뜻한 방에서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그 중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무서운 이야기였다. 가장 소름 끼쳤던 건 한 친구가 주말마다 가위에 눌린다는 사실이었다. 작은 체구에 자주 아팠던 친구였지만 유약하게 보이진 않아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에도 자신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 애가 불쌍하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 경험해볼 수 있을까 하고 설레기도 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더 큰 상상력과 허구를 지어낸다. 그러나 막상 경험해보면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가 매우 주관적이었고 무섭지 않기도 했다. 처음 가위에 눌렸을 때에는 소리도 들리고 무언가가 보이기도 했다. 주로 그때에 보던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무섭기보다 당황스러웠고, 공포영화 조금만 덜 봐야겠다 생각했다. 온 힘을 쥐어짜도 정신만 멀쩡한 기분이 묘했다. 


가위에 자주 눌렸을 시기가 있었다. 취업 준비할 때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싶은데 말을 못했을 때 그랬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는 한 5년 만에 가위눌림을 겼었다. 깨우러 와주는 동생에게 말도 걸었는데 그냥 나가버렸고, 지금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몇 분을 그렇게 있었다. 일어나고 보니 1시간이 지나있었다. 겨우 몇 분 정도 움직이지 못한 것 같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있었다. 동생이 곤히 자고 있던 것 보면 깨우러 오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도대체 왜 가위에 눌리지? 


취업준비생 때부터 나는 '이대로 자면 가위에 눌린다'라는 기분을 알고 있었다. 그런 확신을 뇌가 믿어서 몸이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몸을 미리 알아차리는 건지는 몰라도 오로지 '느낌'만으로 나의 상태를 확신했다. 그 느낌이 오면 20분이라도 스트레칭을 하거나 짧게 기도를 해야한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쉽게 말하지만 한번 눌리니 언제든 다시 눌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인정하기 싫었다. 


왜 눌리는지 알아내면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위에 눌릴 때 나의 몸과 정신 상태가 어떤지 주의 깊게 들여다봤다. 한동안 악몽 같은 꿈은 아침에 일어나서 꼭 노트에 적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일은 한 줄이라도 스케줄러에 남겼다. 그러다가 어떤 패턴이 보였다. 


스트레스받을 때 더 길고 자주 눌리는 건 맞았으나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나는 '회피'하고 싶을 때 가위에 눌린다. 취업 준비생은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당장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못했을 때에는 헤어지자는 말을 도저히 스스로 할 용기가 없어서 그 말을 회피하려고 하다 가위에 눌렸다. 


오늘 아침은 그에 비하면 사소했다. 일요일 오전에 취재를 갔어야 하는데 그 동네가 너무 조용하고 스산하게 느껴져서 세 번은 미루고 오늘은 네 번째 아침이었다. 알람까지 맞춰놓고 일찍 잤지만 다음날인 오늘 아침 알람을 듣고 다시 잠을 자면서 가위에 눌렸다. 네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는 자괴감과 이대로 자면 또 후회할 거라는 실망과 한심한 나를 껴안고 잤다. 그러더니 또 몸이 안 움직였다.


여기서 나에게 반복되는 패턴 두 가지

1. 졸리지 않은데 잠을 자려고 할 때 가위에 눌린다. 

2. 피하고 싶은 일들을 잠으로 도피할 때 가위에 눌린다. 

3. 밝은 햇살이 느껴지는 아침에 눌린다.


계획한 일을 피하면 생각만 남아서 그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반복만 한다. 가위눌리는 상황과 참 비슷하다. 생각만 남아있고 몸은 움직이질 않으니.. 꼭 아침에 눌리는 것도 아침에 특히 의욕적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그러니까 계획도 잘 세워야 한다. 어떤 일을 못하겠으면 포기해도 되는데 포기는 못하고 하지도 않고 계획만 남아있는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혼자서 못하면 도움을 구할 수도 있는 걸. 


나는 이제 회피하면 다음날 가위에 눌린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선택을 해야한다. 회피를 멈추던지 매번 가위에 눌리는 아침을 맞이할지.


생각해볼 문제

1. 잠으로 도피할 수 없다.

2. 할 수 있는 일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3.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해낼 필요 없다. 

4. 도움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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