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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Nov 07. 2022

먹히는 위로

위로하는 말

처음부터 진심으로 와닿거나 위로가 된 건 아니었다. M은 나에게 늘 그런 식으로 대답해왔다. 갖가지 불만에도 항상 비슷한 말만 건조하게 읊조렸다. 그 말을 듣고 나면 '그런가?'라고 잠시 멈추게 된다. 같은 이야기를 성의 없게 대답한다고 여기진 않았다. 검증도 할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하게 맞는 소리이긴 했다. 


네가 진짜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


주로 거울 앞에서 '내 뱃살을 왜 이러냐'라고 투덜댈 때가 아주 많은데 그럴때면 M은 '진짜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라고 말한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금세 치부할 수 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어느 불만에도 대입할 수 있다. '오늘 왜 이렇게 정신 사납지?' '요즘 너무 바빠!' '운동실력이 하나도 늘지가 않아!'라는 불만에도 모조리 같은 대답으로 일관할 수 있다.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말이라서 좋기도 하다. 누구를 특정해서 위로받는 건 어쩐지 찝찝하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이거나,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이 낫다. 


좋은 효과가 또 하나 있는데 당장 위로로 끝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그런 사람이 안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경각심도 따른다. 아직 그 수준이 아니라서 현재, 잠시 위로가 되는 것이다. 안심이 되면서도 묘한 긴장이 뒤따른다. 그래서 매일 같은 불만을 말해도, 같은 위로를 들어도 늘 새롭게 와닿는다. 같은 불만을 말해도 현재 상태가 같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목표는 항상 현재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야 한다. 


'진짜 그런 사람'은 어제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런 사람을 못 본 게 아니라 언제라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될 수 있다. 위로하긴 하는데 은근히 의욕적이게 만든다. "진짜 그런 사람을 못 봐서 그래"가 아니라 "진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로 들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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