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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Dec 30. 2022

무당집 손자

시골에서 자란 내가 놀던 장소들

크리스찬인 부모님은 내가 점집에 가서 노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유치원도 입학하기 전부터 말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 아이들이라곤 동생과 나, 은기오빠뿐이었다. 병설유치원은 6살부터 다닐 수 있었고 그 전까지는 동네에서 자랐다. 나는 90년대에 태어났어도 아빠의 어릴 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보고 자랐다. 특이한 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여자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었고, 나는 어딜 가나 환대받았다. 


은기 오빠가 없을 때면 심심해서 할머니집 투어를 시작한다. 할머니가 놀라오라고 해서 간 게 아니고 과자와 사탕이 있기 때문에 갔다. 뒷 집, 옆 집, 옆옆집에 어떤 과자가 있는지 꿰뚫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는 아니었지만 할머니들이 먹는 모카빵이나 땅콩사탕 같은 것도 먹을만했다. 엄마는 인스턴트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과자 같은 건 집에 온 손님들이 가끔 가지고 올 때에 먹을 수 있었다.


오빠가 오면 동네에 빈 창고 같은 곳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우리의 아지트였는데 악의 무리를 소탕하기 위한 결의를 나름 비장하게 다졌다. 당연히 악의 무리 같은 건 없었고 막대기와 장난감 칼을 들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무서운 곳에 가끔 갔다. 우리가 제일 궁금해했던 장소는 우물이었다. 방치된 우물은 항상 빗물로 채워져 있었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끝자락은 보면 묘하게 무서웠다. "오빠 저기에 뭐가 있는 것 같아? 빠지면 죽을까" 같은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우물에 자주 가니까 어른들은 위험하다며 그 우물을 큰 나무 판자로 닫아놓으셨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은기 오빠집은 산속 깊은 곳에 있었다. 오빠 방에는 게임기가 있었는데 신상팩을 선물 받는 날에는 꼭 우리를 불렀다. 게임하다 보면 할머니가 밥을 해주셨다. 그중에 인생에서 처음 먹어본 녹두죽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록색 빛 죽은 처음이었는데 식감과 맛이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과 너무 달랐다. 엄마의 요리책에는 없는 음식이라서 여기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다. 


그 시절로부터 지금은 거의 30년이 지나있다. 부모님께 그 동네에 살던 은기오빠에 대해 물어봤는데 아빠가 '아~무당집 손자'라고 말하셨다. 내가 꽤 놀란 건 우리 부모님은 집사님이었고 목사님과 친할 정도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때문이다. 무당 할머니은 동생과 나만 갔지만 교회에서는 가족 모두가 목사님네 가족들과 많이 놀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무당인걸 알고도 우리가 거기 가도 괜찮았어?'라고 되물었다. 아빠는 '아울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무당 할머니와 어릴 적부터 단짝 친구였어. 뭐 어때'라고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하긴 할머니들도 어렸을 적에 우리처럼 놀았을 평범한 아이들이었겠지 뭐.



은기 오빠 어디 있는 거야?


은기 오빠는 어릴 적 서울로 전학을 갔고 우리 집도 이사를 한 이후로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수소문하는 건 어른들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부모님만큼 오래 그 동네에서 자란 고모와 큰아빠가 있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그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은기가 첫째의 아들인지 둘째의 아들인지부터 헷갈려하셨다. 심지어 둘 중 한 분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엄마는 그분을 봤는데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가 호러로 변해갔다. 상황이 더욱 미궁 속으로 흘러간 와중에 확실한 건 그분들과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다리를 건너야 알까 말까 한 상황이라 흐지부지 돼버렸다. 이번 명절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봐야지. 내 인생에서 제일 처음 친구가 된 은기 오빠를 죽기 전에 찾아내고 싶다. 기다려 은기!



*은기라는 이름을 실명이고 성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면 댓글을 남겨줬으면 하는 바람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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