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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n 14. 2023

권위의 무서움

배우며, 가르칠 때 드는 생각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과 함께 할 때 드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어른의 말에 생각보다 훨씬 더 귀 기울인다. '아 이거 두껍게 했어야 하는데'라고 속삭이듯 말해도 '아 저 망했죠!'라고 울상인 아이도 있었다. 뭐든지 순수하게 흡수하는 아이들을 보면 오지랖이지만 가끔 걱정된다. 아마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이럴 시기가 있고 사춘기처럼 반항에 절정인 시기가 있을 거다. 


하지만 저학년이었을 때 어른들의 말을 너무 지나치게 들었을 경우에는 예술적인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싶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정규 교육을 통해 죽는다고도 격렬하게 비판하던 분도 있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어딘가 기괴하기도 했는데 어떤 해방감이나 쾌감까지도 느껴졌다..


말 잘 듣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어땠을까? 갑자기 오늘 일이 떠올랐다. 2년이 넘게 도자기를 배우고 곳이 있는데 수업할 때에 선생님의 말에 격렬하게 끄덕이던 내 모습.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를 배우는 곳이 있다. 그 센터에 가기 전에 만들고 싶은 기물을 정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굽 없는 낮은 앞접시를 만들려고 했다. 선생님은 그만한 크기라면 굽을 높게 달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고, 마침 홍진경 유튜브에서 본 그릇들이 생각났다. 분명히 제사 목기처럼 보였지만 홍진경이 쓰는 그릇이라 뭔가 있어 보였다. 그게 생각나서 방향을 급하게 바꿨다. 


어느 정도 기물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가장자리에 원형의 선을 얇게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최근에 스마일을 그렸는데 판매가 정말 잘됐다며 스마일을 넣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셨다. 듣자마자 그게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나는 선생님이 말한 노란 얼굴의 큼지막한 스마일이 아니라 귀퉁이에 작은 도장처럼 그려 넣었다. 


내 의견 하나 들어간 게 이거였다. 붓이 좋지 않아서 선의 굵기가 일률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나름 귀엽고 퍽 봐줄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선생님은 지우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그 정도라고요? 초벌하고 나서 자신의 공방에 와서 제대로 된 도구들로 다시 그려도 된다고 말해주셨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오히려 번거롭기만 한 일을 내 도자기를 위해 배려해 준 것이다.


선생님의 호의와는 별개로 오늘 작업을 마치고 유난히 찝찝했다. 두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밤 조용히 운전을 하며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 고심해서 내가 만들려던 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걸 알았다. 물론 굽이 높은 접시를 처음 만들어보고, 평소 그리지 않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분명한 건 원래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초등학생들과 함께 수업했을 때 옆에서 엄마들이 이래라저래라 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처럼. 오늘 유난히 수용적이었던 내가 안타까웠다.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자신 없는 실력을 가지고 내 취향을 지켜내기가 녹록지 않다. 스마일은 안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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