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닝, 어떤 동사의 멸종
이 작가의 첫 번째 책 '퀴닝'은 분명 닮고 싶을 정도의 글발 내공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술술 읽혔다. 가감 없는 묘사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마치 글자 위에 사진이 찍혀 있는 것 같았다. 글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쉽게 프린트 됐다. 한동안 퀴닝을 추천하는 것은 물론 직접 사서 친구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지만 두 번째 책 '어떤 동사의 멸종'은 한 챕터를 넘기지 못했다. 재미없는 게 아니라 갑자기 한 문장에서 더 이상 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졌다. 사람을 묘사하는 방식이 왠지 거북했다. 비아냥 거리는 태도가 시건방졌다. 단 두 문장이 그랬다.
이 글이 현실 속 대화였다면 사회부적응자의 발언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꺼내고야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작가일까. 심지어 나도 그런 글들을 쓰고 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사실적인 글을 좋아하면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문장도 많았겠지.
회사에 두고 온 '어떤 동사의 멸종' 말고 세 번째 책은 '고기로 태어나서'는 어떨지 펴봤다. 훑어봤는데 묘사 방식이 그대로다. 내가 좋아하는 첫 번째 책 '퀴닝'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 시점에서 마음이 불편해질까?
한승태 작가가 첫 르포 '퀴닝'에서는 돼지농장, 고기잡이배에서 일했다면 '어떤 동사의 멸종'은 콜센터로 시작한다. 기분이 안 좋아진 건 사무직 여성을 묘사할였다. 고작 한 두 문장으로 부아가 치미는 건, 믿기 싫었지만 나를 보는 것 같아서인 것 같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같았다. 실제로 나의 회사생활이 그러고 있다. 그 문장을 읽을 때 우리 회사의 사무공간, 건물의 복도, 출근길을 떠올렸다. 내가 이 에세이의 주인공이라니 읽기 싫어진다.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돼지농장, 고기잡이 배 같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해하며 재밌어한 내가 왜 이렇게 하찮게 느껴지는 건지. 낯 뜨겁게 하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