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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Jun 16. 2016

영화<아가씨> 한 숨에 읽기

영화<아가씨>를 보고 나오니 몇 개의 뉴스가 다시 눈에 띈다. 어느 대학교 남학생들이 카톡방에서 나누었다 공개된 각종 음담패설과 폭력적 언사들. 그리고 어느 배우 겸 가수가 친구들과 모여 벌였다는 음습한 생일잔치. 남자들만의 지하실. 남자들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하지만, 막상 드러내기는 꺼려지는 그런 일들. 공개적으로는 비난하지만 사적으로 결백하기 어려운 남자들의 세계. 자의로 몰두하거나, 소속되기 위해 강행해야하는 일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를 오늘에야 봤다. 그의 영화는 어렵다. 이번 영화가 그나마 대중적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영화를 볼 때면 복잡하게 짜여있는 구조와 연기, 공간, 분장, 의상 속에 숨어있는 메타포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몰라 움츠러든다. 그럼에도 굵직한 이야기 흐름과 의미들을 한 호흡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야기는 코우즈키(조진웅)와 백작(하정우)의 욕망을 배경으로 두고 출발한다. 코우즈키는 한일 합방 시기 통역사로 ‘활약’하여 막대한 부를 쌓은 남자다. 통역사는 신분은 낮지만 엘리트들이 점유했던 문자를 다루는 사람이다. 그의 자아는 식민지인이어서 또 낮은 계급이라 갖게 된 열등감과 시대가 유리해져 갑자기 잘 나가게 되면서 생긴 우월감이 혼재해 있다. 내적 자기 완성이 아닌 외적 조건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모습이 꼭 흔한 남자들을 닮았다. 그가 머무는 집은 동양과 서양이 혼재된 곳이며 화려하지만 어둡다. 또 음습하다. 그의 서재는 남자들의 카톡방을 연상시킨다. 그럴 듯하게 꽂힌 장서들을 지나면 그것을 보며 말로 즐기는 낭독의 공간이 나오며 그 안에는 가장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이 있다.

좋지 않은 욕망이다. 궁극적인 행복을 줄 수 없는, 쫓아갈수록 허망해지는 욕망이다. 코우즈키는 일본은 아름답고 조선은 추하다며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추잡함을 얼마나 은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음란하지만 예쁘게 그려진 그림들, 변태적이지만 잘 차려입은 남자들이, 음습하지만 화려한 집에 모여 고상함을 말하고 있다. 일본을 추앙하는 그가 끼니 때는 냉면을 먹는 모습을 보니 실소가 나온다. 그의 고상한 취미가 온전히 내면화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는 일본인 조카 히데코(김민희)와 결혼하여 그녀가 소유한 막대한 돈을 상속받아 취미 생활을 지속하고자 한다.

백작은 사기꾼이다. 그림 모사(模寫)를 잘 해 코우즈키에게 접근한다. 코우즈키가 팔기 싫은 책을 억지로 경매에 내놓을 때를 대비해 가짜를 만들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작은 코우즈키의 조카 히데코에게 관심이 있다. 그녀를 꽤서 탈출한 후 결혼하여 부자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려는 이유가 웃기다. 한 마디로 가오 있게 살고 싶어서다. 매음굴에서 돈을 벌어 비싼 와인을 먹는 걸 호기롭게 얘기하는 남자다. 백작도 공허하게 성공을 쫓는 남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는 숙희(김태리)라는 여자를 하녀로 소개해 히데코에게 붙인다. 그리고 숙희에게 히데코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도록 조력할 것으로 주문한다. 그리고 숙희에게 히데코와 탈출하여 유산을 현금으로 바꾸면 히데코를 정신병원에 감금할 것이라는 계획도 말해준다. 한편 (극에서는 중요한 반전이지만) 히데코에게는 역으로 숙희를 잘 꽤서 일본으로 데려간 후 히데코를 대신해 정신 병원에 넣을 거라는 계획을 말해준다. 히데코에게는 숙희가 눈치 채지 못 하도록 연기를 잘 할 것을 부탁한다.

히데코와 숙희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사이다. 히데코는 이모부 코우즈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남자들 앞에서 곱게 치장하고 앉아 음담패설을 읽어주는 것도 지겹다. 코우즈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삶의 목적이고 그래서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히데코에게 남자는 억압이자 구원이다. 한편 숙희는 가난한 조선인이다. 구질구질한 삶이 싫고 생존을 위해 이래저래 얽매여 사는 게 싫다. 그녀는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백작은 누구를 최종적으로 정신병원에 넣을지 선택할 수 있는, 결말을 결정할 남자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두 여자의 변심 때문이다. 숙희는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키워왔다. 버려진 갓난아기들을 먹이고 닦여 일본에 입양 보내는 일을 했다. 유명한 도둑을 엄마로 둔 겉으론 억세 보이는 여자지만, 젖이 나온다면 제 아기만 먹이지 않을 거라 말하는 인간애를 지녔다. 히데코를 속이러 왔지만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닦이고 입혀주면서 ‘제 자식’처럼 돌본다. 하녀의 속성과 모성애적 헌신이 겹친다. 그녀는 백작과의 계획을 성사시키는 데만 몰두해야 하지만 자꾸만 히데코에 대한 감정을 키우며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히데코는 거짓말이 싫은 여자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진 않는다. 구중궁궐 속에 있어서 외로운 여자다. 히데코는 솔직한 숙희가 마음에 든다. 자신을 속이기 위해 들어왔지만 점점 선을 넘어 자신에게 넘어오고 있는 그녀가 가엽고 또 사랑스럽다. 두 여자의 정사씬은 신분과 나이를 넘어 서로를 받아들이는 연대의 의식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순수한 감정은 확인했는데 문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느냐다. 히데코는 숙희가 백작과 사랑하시게 될 거라는 말을 하자 따귀를 때린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다. 그녀는 이모부의 그늘을 탈출한다고 해도 그 밖이 진정한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똑같은 곳일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백작이 아닌 숙희가 구원의 열쇠를 쥔 것 같다. 그녀는 이모가 목을 맨 나무에 제 목도 맨다. 하지만 숙희가 달려와 히데코를 구하고, 모든 것을 토설하며 용서를 구한다. 진짜 감정을 밀어붙임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서로 가짜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진짜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의 순간이다.


이 영화의 동성애 코드는 성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여성이 각자의 욕망을 위해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각과 각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남성적인 세계에 투항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왜곡한 세계를 파괴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뱀의 머리를 부수고 집을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코우즈키와 백작이 다시 만나 음습한 지하실에서 우습고 또 초라하게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과 망망대해 위, 밝은 달 아래에서 두 여자가 정사를 벌이는 것이 대조적이다. 정사 장면을 풀샷으로 담은 것도 메시지를 명료하게 한다. 그녀들은 숨어서 그저 남자에 대한 불만을 속닥이는 모습이 아닌 거리와 광장에 모여 자신 있게 변화를 주장하는 선동가의 모습이다.


영화의 구성이 3막으로 이뤄져 동일 사건이 다른 시선으로 그려지는 건 자기 욕망 안에서는 바뀔 수 없는 것들이 다른 시선을 중첩해 봤을 때 색다른 길이 열린다는 점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자칫 반복감이 지루함을 줄 수 있지만 변주와 유머로 그 난처함을 잘 극복하고 있어 보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화차>에서와 같이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뿌리는 김민희의 연기도 훌륭하고 마초이면서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는 조진웅도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지만 극의 기둥을 확고하게 세워준다. 백작으로 분한 하정우는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균형감을 잘 찾고 있다. 신인 김태리의 힘도 잘 느껴진다.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극을 선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 하고 나오는 황망함을 종종 느낀다. <스토커>를 보고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나니 큰 흐름은 놓치지 않은 것 같아 안도감이 먼저 든다. <아가씨>가 대중적이라는 평이 있어도 박찬욱 아닌가. 하지만 안과 밖이 모두 잘 짜여 있어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번은 더 봐야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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