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어릴 적 나는 바이크를 타는 아버지 뒤에 매달려서 종종 등교를 했었다.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버지 등에 몸을 찰싹 붙인 상태로 바이크 뒤에 매달려서
학교를 갔었다.
지금의 나는 당시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
언젠가부터 바이크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 등에 기대어 탄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오래전 터키 카파도키아를 갔었을 때 그곳에서 스쿠터를 빌려서 타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던 기억도 좋았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큰길을 벗어나면 한적한 길이 많다. 가끔 그곳을 다니면서 혼자 바이크를 타고 라이딩을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어떻게 바이크 면허증을 따야 하는지를 검색해보았다. 미국은 자격증이 있는 코치에게 일정 시간 교육을 받고 그 코치가 수료증을 주면 그 수료증으로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가 있다.
동네에 있는 Harley Davison 매장에서 라이딩 교육이 있는 걸 확인했다.
수업시간은 매주 금 토 일. 총 22시간의 수업이다. 아 정확히는 20시간 수업이다 중간의 점심시간이 2시간 포함이니.
인터넷으로 접수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접수를 하니 접수되었다는 이메일이 날아오고
온라인으로 안전 교육을 받으라 한다. 총 3시간짜리 교육이다.
바이크의 기본 작동법과 안전 교육. 특히 안전 교육이 주된 내용이었다.
열심히 귀를 쫑긋 세우고 교육을 받고 문제를 풀고 이건 바이크 교육이 아니라 나에게는 영어 수업이었다.
독해와 듣기 평가.
쉽지 않게 그 온라인 교육을 끝냈다.
구입한 안전 장비들. 이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교육을 받기 전에 준비해야 할 물품들이 제법 있었다. 모두 안전 장비들.
헬멧도 구입하고 바이크용 장갑 그리고 발목 위로 올라오는 바이크용 신발. 이 안전 장비가 없으면 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 부푼 마음을 안고서 나름 맘에 드는 장비들을 구입했다. 이것도 제법 가격이 나왔다.
같이 간 와이프가 한번 눈 흘김을 한다. 도대체 또 얼마나 사들이려고 하는.ㅎㅎㅎ
보통 대부분의 와이프들이 남편이 바이크를 탄다 하면 반대를 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 반대에 부딪쳤었다.
그러다가 중년 남자의 로망 중 하나인 바이크 타기를 허락해주었다. 일단 면허만 따겠다. 바이크 구입은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내가 약조를 한 뒤에 허락을 받아 내었다.
바이크 위에 걸터앉은 사람이 코치중 한 명이다.
첫날 수업.
이론 교육이다. 나와 함께 교육을 받는 인원은 나 포함해서 총 11명. 코치는 두 명.
서로 각자 소개를 하는데 바이크를 처음 타보는 사람은 나 혼자다. 다들 조금씩은 경험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첫날 수업이 또 듣기 평가였다. 알아듣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에게 자꾸 질문도 한다.
머리에 쥐가 난다. 어찌어찌해서 첫날 교육을 끝냈다.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교육용 바이크가 안전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다.
둘째 날.
아침 8시까지 모여서 하루 종일 이론과 실기 교육이다.
부슬비가 내린다. 날도 춥다.
각자 1대씩의 교육용 바이크를 배정받았다.
이런! 교육용 바이크가 할리 500cc 다. 덜컥 겁부터 났다. 125cc 배기량 정도의 바이크로 교육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클러치를 잡아보니 너무 뻑뻑하다. 앞 브레이크, 뒷 브레이크 할 것 없이 너무나도 힘이 많이 들어간다.
새로 산 바이크용 장갑은 길이 안 들어서 영 불편하다. 신발도.
1단 기어를 넣는 법 , 앞으로 주행하기, 지그재그로 주행하기, 주행 중 기어 변속하기, 급정지하기, 등등이 오늘의 교육 내용이다.
처음에는 잘 따라갔다. 1단 기어를 넣고 출발도 잘하고 나름 균형도 잘 잡으면서 지그재그 코스도 통과했다.
문제는 내가 자꾸 클러치 레버를 잡고 간다는 것이다. 속도에 대해 겁을 먹었다. 그리 빠른 속도도 아니었다.
시속 10킬로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자꾸 내가 클러치 레버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어설프게 주행을 했다. 코치는 클러치 레버에서 손을 놓아라 자꾸 이야기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얘진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되뇌고 시뮬레이션을 했던 것들이 막상 바이크를 출발시키고 난 순간부터는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
클러치 레버를 잡고 1단 기어를 놓고 천천히 클러치 레버를 놓으면서 트로틀을 당기고 두 다리를 바이크에 밀착시키고 어느 정도 속도가 올라가면 기어를 변속하고 코너를 돌 때는 핸들바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밀듯이 혹은 누르듯이 하고 머리는 가야 할 방향으로 돌리고 시선은 늘 멀리 보고 등등 모든 것들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중간중간 시동도 여러 번 꺼트렸다. 자꾸 당황을 하게 된다.
교육용 바이크. Harley Davison Street 500이다
클러치 레버를 잡는 왼손 손목이 너무 아프다. 내가 이렇게도 악력이 약했나라고 자꾸 생각이 든다.
더욱더 왼손에 힘을 주다 보니 통증이 더 심했다. 시동을 자꾸 꺼먹으니 더 긴장한 듯도 했다.
마음은 시속 100킬로 넘게 마구 달리고 싶으나 몸이 제멋대로다. 코너를 돌 때 넘어질까 봐 너무 겁을 먹는다.
배운 대로 하면 되는데 겁부터 먹고 어설프게 코너를 가까스로 통과한다.
아아아 내가 왜 이걸 배우려고 했지?라는 의문이 들고 포기하고 싶다란 생각이 마구 올라온다.
중년의 남자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인데 그 자신감을 얻기 위해 바이크를 배우려고 한 것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라고 다짐을 하면서 교육을 계속 받았다.
어찌어찌해서 둘쩃날 교육을 끝냈다. 계속 긴장을 해서 인지 그리고 안 쓰던 근육을 쓴 탓인지 온몸이 다 욱신거린다. 특히 왼쪽 손목과 허벅지가 너무 쑤시고 아팠다.
코치도 집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근육을 풀어주라 한다. 다들 힘들어한다.
매장 안의 바이크 일부. 이런 바이크를 탈 생각에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세째날.
오늘만 교육을 잘 받으면 수료증을 받는다.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었다. 오늘도 날이 많이 춥다. 영하로 떨어졌다.
속으로 겁먹지 말자 겁먹지 말자 하면서 교육을 받으러 갔다. 교육을 받으러 가니 수강생 중 한 명이 안 나왔다.
어제 나처럼 많이 힘들어하던 분이었다. 나름 동료애(?)를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위안이 되던 분이었는데 결국 포기를 하셨나 보다.
강의실에서 간단한 이론 교육을 하고 바로 주행 연습을 하는 곳으로 갔다. 오늘은 그룹 라이딩도 있다 한다.
바이크를 워밍업하고 연습장 끝에서 반대쪽 끝에 있는 주차하는 자리로 가라 한다. 앞에서 줄줄이 출발한다.
나는 출발하자마자 시동을 꺼트렸다. 왼손이 문제였다. 손목이 아파서 힘을 제대로 조절을 못한 탓이다.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코치가 주차하는 자리를 알려주는데 내가 착각을 했다. 왼편에 주차하라 했는데 오른편으로 갔고 실수로 트로틀 레버를 조금 당겼다. 익숙하지 못한 탓이었다. 잘못하면 크게 사고가 날뼌했다.
결국 코치가 나를 따로 불렀다.
교육을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절대 창피한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너는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자기가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할터이니 다음에 스케줄을 다시 잡아서 교육을 다시 받았으면 좋겠다.
너와 나머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교육을 다시 받아라라고 말해준다.
나 스스로도 아직 준비가 덜되었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코치가 그렇게 말을 하니 무리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나로 인해 타인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는 것이니.
결국 다음에 교육을 다시 받는 걸로 하고 나는 중단했다.
어설프게 연습하고 면허를 받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판단했다.
예전처럼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년 남자의 도전은 일단 실패다. 하지만 다시 시도는 할 것이다.
바이크가 아닌 스쿠터를 타고 다닐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