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세이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저는 이곳 저곳 많이 이사를 다녔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해볼 생각에 한국인이 보이면 이사를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웃기죠, 어차피 집에 쳐박혀서 나오지도 않는데 한국인만 안보이면 나는 영어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암튼 학원과 집을 병행하던 어느날,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스트라스필드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외로워서였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평상시에도 친구가 없었던 나는 소위 한인촌으로 이사를 간다가 뭔가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주위가 시끄러워지고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오늘도 평범한 오타쿠처럼 조용히 지내는거였죠. 그러다 모처럼 이사도 왔고 하니,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자는 생각에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었죠.
그러다 눈에 띈 비디오 가게가 하나 보였고, 한국에서 상영중인 드라마나 시트콤을 녹화해서 대여해주던 가게였죠. 아무생각없이 그곳에서 서성였고, 오직 영어공부를 위해서 한국 시트콤은 절대 보면 안된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웃기죠, 그런데 거길 왜갔는지…
그러다가 눈에 띄게 된 일본 비디오가 있었습니다. 겉에 아무런 표시가 없이 검은 비디오테이프에 한글로 옆쪽에 롱베케이션이라고 써져있어서 혼자서 쓸데없는 상상을 했었죠. 20대의 젊은 놈이 생각하는건 뻔한거 아니겠습니까
그저 들뜬마음에 바로 대여해서 집으로 쏜살같이 뛰어갔습니다. 분명 새로 이사와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하고 저녁에 먹을것도 살 겸 마트도 다녀와야겠단 생각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그저 비디오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트는 순간 일반 드라마와 같은 전개가 펼쳐지더군요. 그래서 와 요즘은 성인물도 이렇게 스토리가 있구나 기술이 장난이 아니네라고 혼자 감동하며 즐겁게 상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일본 드라마는 키무라타쿠야가 나오는 롱바케였죠.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집중하며 본 드라마는 20대에 그 드라마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스토리였고, 너무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남자인 제가 지금도 그저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뭐든지 봐버리는 덕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일본 드라마에 관심을 갖고 롱바케에 빠져버린 이후, 어학원을 가니 평상시에 보이지 않던 일본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20대의 꿈많은 나이여서인지, 그저 이렇게 행동하면 여자들이 날 보고 있을꺼야, 특히 일본여자들이 날 보고 반응하고 있을꺼야 라는 말도안되는 나만의 상상을 하며 독특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생각하면 왜 그런 웃긴 짓을 했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그저 20대려니 하는 생각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월반을 하고 만난 새로운 클래스의 친구들 주로 중동친구들과 일본친구들이 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첫날 우린 다들 자기소개를 했죠.
Hi, My name is 키무라,
Hi, My name is 요꼬야,
Hi, I’m 술탄,
I’m 압둘라
등등 그렇게 인사하던 순간 한 한국여학생이
Hi, My name is 000, Call me 스프라이트 라고 했죠. 순간 저도 튀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나를 각인시켜야겠다는 충동이 밀려왔죠. 그래서 저도 인사했습니다.
Hi, My name is 000, Call me 퐌타!!!
몇몇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더군요. 비웃는지도 모르고 저는 사람들 머리속에 각인시켰다는 생각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1~2주가 지났을까요, 선생님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설명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칠판에 일본을 엄청 작게 그리고 제주도를 엄청 크게 그렸더니 요꼬야라는 일본 남자가 저보고 왜 일본이 그렇게 작냐고 하면서 따지더군요.
서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설명하고 있었고, 저는 말이 안되는 얘길 하고 있었죠. 니네가 간이 콩알만해서 나라도 그만한거라고 ㅎㅎ 그걸 말도 안되는 영어로 설명하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죠.
그러다가 집갈 때 남아 (see me after school)이라고 말하고 수업이 끝나고 시드니 어느 골목에서 요꼬야를 협박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우리는 요꼬야가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었습니다.
그러면서 접하게된 두번째 드라마가 역시 키무라타쿠야가 나오는 러브 제너레이션이었죠. 솔직히 롱바케는 주인공 여배우가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러브제너레이션의 마쯔다카코는 너무나 키무라타쿠야와 잘 맞는 배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죠. 그 후에도 많은 일본 드라마와 영화 등을 접하고 운좋게도 젊은 날 만난 지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내 첫 일본인 여자친구 토모에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습니다.
팔불출 같은 얘길 하나 한다면, 지금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내는 제일 교포입니다.
제 아내는 진짜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아무도 그녀가 한국말할 때 외국인이라고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내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여보 우리가 지금 어디살아?
어? 간남,
어디?
간남
ㅋㅋㅋ
강남 발음이 절대 안되는 그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