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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Oct 29. 2020

지금 하고 있는 걸 그때도 했었더라면



1. 독서

유치원생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친한 친구가 없어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책과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어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칭찬하곤 했었는데. 친한 친구가 생기고 나서 독서를 놓았다. 몸으로 노는 게 더 즐거웠다. 분명 활자 속에서도 난 즐거웠는데. 그 사실을 놀이터에서 놀면서 잊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독서량은 일 년에 한 권도 읽을까 말까 할 정도로 급격히 줄었다. 어릴 적 독서광이었던 그 습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독서 해왔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며, 현명한 혜안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2. 영어

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문학이었고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쌓은 실력으로 시험에서 꽤 좋은 점수를 맞곤 했다. 당시 나를 가르쳤던 영어 학원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대학교 들어가서도 영어는 놓지 말고 꾸준히 하라고. 토익 시험도 매번 보고 영어 실력이 퇴화하게 두지 말라고. 분명 인생에 꼭 도움이 된다고. 나는 대학 입학 후 전공, 교양이 아닌 이외의 공부는 싹 다 놓아버렸다. 거기엔 영어도 포함됐다.


일 년 전, 한 회사에서 UX디자인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내가 투입된 팀은 한창 도메인 스터디와 베이직 리서치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을 도와야 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해외 아티클 및 영어 논문을 찾고 한글로 요약·정리해서 팀원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전부 잊어버린 나는 매번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에 영어 자료를 통째로 돌리고 그다음 내가 일일이 원문과 번역글을 읽어 보며 맞게 번역됐는지 삼중 확인을 해야 했다. 당연히 업무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고 종종 회사 일을 퇴근 후 집까지 가져가서 했다. UX디자인 인턴은 영어 번역으로 시작해서 영어 번역으로 끝났다. 나는 그 '영어' 하나 때문에 인턴 생활을 하며 우울증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 뒤늦게 토익학원에 다닌다. 매일 몇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때 영어 학원 선생님의 말을 뼈에 새기고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왔더라면 성공적인 인턴 생활을 할 수 있었을뿐더러 지금 이렇게 놓치기 직전 버스를 쫓아가는 마음으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을 텐데.


3. 글쓰기

중·고등학교 시절 개인 블로그에 비밀글로 일기 비슷한 글을 계속 써왔다. 주로 사춘기 시절 겪는 무척 다양한 감정들을 토하는 글을 썼다. 단편 소설도 썼었다. 나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위에도 언급했듯 대학교에 들어가서 필요한 공부 외에 다른 공부는 놓아버렸는데, 글쓰기도 함께 중단됐다. 내 전공은 레포트를 쓰기보다는 거의 대부분 디자인툴이나 코딩 프로그램을 썼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스스로 '본 투 비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은 글을 자주 안 써도 될 거라는 오판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자기 분수도 모르는 근거 없는 자만심으로 꽉 찬 생각을 버리고 대학생 시절 문예창작학과 전공 수업을 몇 개라도 들었더라면, 그게 아니더라도 글을 잘 쓰기 위해 작법서를 읽고 글쓰기 클래스를 들어왔더라면, 지금 이렇게 매일 설익은 에세이를 쓰며 글쓰기 실력을 처절하게 늘리려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사람들에게 훨씬 더 좋은, 맛있게 잘 묵은 글을 내보일 수 있었을 텐데.





후회로 점철된 나는 안다.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 하고 있는 걸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과거로 돌아가 지금 하고 있는 걸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지금의 내가 되어서 또 다른 부분에 대해 후회 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뭐를 했더라도, 뭐가 됐더라도 언제나 후회할 거라는 걸 안다. 후회는 끈기있는 거미다. 거미줄을 부수면 다시 짓고, 부수면 다시 짓는다.

내일은 '지금은 안 하지만, 그때 했던 걸 지금까지 했더라면.'이라는 새로운 후회를 해야지.

지금 내 방은 온통 거미줄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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