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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26. 2020

달리기와 나,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25분 연속 달리기를 하고 집에 와서 그린 그림



2020년 8월 16일. 20분 연속 달리기를 처음 한 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공원에 가는 내내 눈을 꿈뻑거렸다. 햇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20분 연속 달리기를 했다. 완주하고 나서 나 자신이 훨씬 긍정적이고 건강하고 깨끗해졌다는 걸 느꼈다. 이제부터 아침에 달리기를 해볼까 한다.






2020년 8월 19일. 25분 연속 달리기를 처음 한 날

오늘은 7시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조금 더 자다가 7시 50분경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8시가 가까워지니 햇빛이 뜨겁고 눈부셨다. 이렇게 쨍한 날씨보다 선선한 이른 아침에 뛰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25분을 뛰었다. 더는 못 뛸 것 같다는 생각이 달리기 후반부에 몇 번이고 들었지만, 생각을 비우고 그저 내달렸더니 어느새 25분을 채웠다. 완주 후에는 진이 다 빠져서 힘없이 걸었다. 그래도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풍족했다.


달리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운동이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달리기는 잊게 해준다. 달릴 때만큼은 내가 터질 만큼 꽉 껴안고 있었던 온갖 근심 걱정을 잊게 된다. 부는 바람에 생각이 잠시 흩어지는 건지, 땅에 내딛는 발걸음에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건지. 달릴 때만큼은 고민들이 사라진다. 두 번째로 달리기는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우울함이 자주 찾아오는 나는 달릴 때마다 초록빛 생기를 얻는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들숨과 날숨이 격정적으로 오가고, 발을 땅에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쿵쿵거리는 진동이 생명력을 펌프질 한다. 나는 그 생명력을 전부 다 들이마신다.


이제 다음번 달리기는 대망의 30분 달리기인데, 기대된다. 완주하고 나서 울컥할 것 같다. 8주 동안 열심히 한 가지 목표(30분 연속 달리기)를 보고 달려왔는데, 드디어 이루어지다니. 30분을 뛰고 나서 씻은 다음 글을 쓸 것이다. 처음 30분을 뛴 그때의 소감을 잊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






2020년 8월 21일. 30분 연속 달리기를 처음 한 날

오늘 아침,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에 성공했다. 처음 10분을 뛰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렸다. 20분째 됐을 땐, 아무 생각도 없어졌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저 헉헉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달리다 보면 힘든 수준이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일정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엔 오로지 달리는 나 자신밖에 인지되지 않는다.(물론, 땅에 죽은 매미가 있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진다) 종료 5분 전이 되면, 곧 끝날 걸 알아서 그런지 다시 힘들어진다. 이때 배 근육이 아팠다. 노래 한 곡만 더 들으면 끝나! 라는 집념으로 30분 완주를 해냈다.


해낸 직후, 감동이 벅차올라 눈물을 글썽였다. 이런 성취감은 인생에서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노력한 대로 그대로 정직하게 결과를 냈고, 목표를 이루었다. 성공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들을 여태 겪어 왔는데 이런 정직한 성공은 내게 어떤 희망을 주었다. 그래, 이런 성공을 나도 할 수 있어. 정직한 성공도 세상에 존재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일들은 내가 못해서,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정직한 결과를 내는 일이 아니었던 거야. 나는 잘해왔던 거야.


달리기를 만난 건 내게 천운이다. 비록 8주 동안의 도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나는 성장했다. 체력도 마음도 정신도 모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릴 계획이다. 달릴 때만큼은 모든 게 동등하고 아무 생각 없어지니까. 어떤 평가도, 어떤 잣대도 사라지니까.


달리기로 노래를 만들고 싶다. 달리기로 그림을 그리고 싶고, 포스터를 만들고 싶다. 달리기가 좋다. 건강하고 멋진 취미가 생겨서 기쁘다. 달릴 수 없는 다리가 될 때까지 달려야지.






2020년 11월 25일. 달리기를 하고 있지 않은 날

극도로 몰두해야 할 바쁜 일이 생겨 잠시 쉬었던 달리기를 지금까지 쉬고 있다. 이제 쉬고 있는 날을 일, 주가 아닌 달 단위로 세어야 한다. 부끄럽고 슬프다. 날 이렇게 만든 건 게으름일까 아니면 이제는 다른 대상을 달리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어 변심한 걸까. 둘 다일까.


이 뭉클한 감정을 끝내려면 다시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서면 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이별통보를 하고 뒤늦게 후폭풍이 온 사람처럼, 과거에 달리기를 사랑했던 나의 기록을 보며 아련한 슬픔에 잠겨있고 싶다.. (추워서 나가기 싫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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