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문들 #2

부제 : 사각거림

by 김표고

<김추추의 이야기>


그리운 기억: 사각거림

“이거 얘가 쓴 거예요!”
“하지마아”
“김떙땡이 바로 얘라구요, 얘!!”

나보다 신난 건 그 사람이었다. 맨 처음, 내 몇 장 안 되는 글이 인쇄되어 한 권의 책 속에 낑겨 나왔을 때,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집어들고는 한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을 때, 옆에 서 있던 남자친구는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이 글을 얘가 썼다니까요!
인기도 없는 잡지의 인턴 나부랭이가 쓴 단 2장의 글을 가지고, 거기에 박힌 이름 세 글자를 가지고 스물 몇의 우리들은 얼굴이 벌개지게 상기됐다. 니가 정녕 사회인이 되다니.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니 이름 석 자를 남기다니, 아직 학생인 스물 몇의 남자친구는 나를 우러러봐 주었다. 나는 기꺼이 우쭐거렸고, 우리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렇게만 자란다면 조만간 출판계의 거물이라도 될 것처럼, 우리의 미래는 한없이 맹랑했다.

출판계의 거물 같은 것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한둘을 포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첫사랑이 사라지고 한동안 방황하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사각거린다.

햇빛에 잘 말라 해 냄새가 나는 뽀얀 이불 같은 것은 광고에나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 살아온 내가 현실에서 그 느낌을 만난 적이 있을까. 현실의 삶에서 실제로 사각거리는 것은 깨끗한 종이 몇 장, 마른 바닥을 오가는 깨끗한 발바닥들, 그리고 절대로 잊히지 않는 깨끗한 기억 몇 씬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깨끗한 것은 유난히 사각거린다. 특히 기억은, 지금의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좋은 기억들은 유난히 햇볕의 냄새 같은 것을 풍기며 사각거린다. 스물 몇의, 사회가 어쩌고 임금이 어쩌고 목표가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하면서도 아무래도 좋았던 그때의 인생처럼.
내 손으로 휴지 한 통 사본 적 없어서 걱정이라고는 쟤가 나보다 이쁜데 어쩌지, 정도뿐이었던 그 나이처럼.

눅눅한 희로애락이 끼어들 틈 없는, 내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은 들춰볼 때마다 얼마나 사각거리는가.
아마도 그것들은 내가 애저녁에 읽고 덮은 한 권의 책이라 그럴 테다. 출간한 이후 내가 아니면 누구도 들추지 않아 여전히 깨끗한, 한 권이 책이라 그럴 거다. 나만 가진 기억이라 유난히 사각사각, 평온한 하루에 기분 좋은 소음을 남기며 반짝일 테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 니가 사각거린다.


글 : 김추추 (writer0511@gmail.com)




<김표고의 이야기>


















글, 그림 : 김표고(인스타그램 @kimpy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