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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May 20. 2024

초커 목걸이와 단두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

초커는 목을 조이는 뜻의 단어 초크(choke)에서 유래된 '목에 알맞게 감기는 목장식'을 말한다. 값비싼 보석으로 전체를 꾸민 것도, 펜던트만 단 것도 그리고 끈이나 리본만으로 목을 감싼 것도 모두 초커이다. 40대 이상은 초커하면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단발머리의 마틸다는 한 손엔 화분을 들고 목엔 은색 펜던트가 달린 검은띠의 초커를 하고 있었다.   

영화 '레옹' 스틸컷

영화가 아닌 그림으로 넘어오면 초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클림트는 여성들의 초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유명한 그림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화려한 초커를 하고 있다. 강렬한 황금색과 기하학적 무늬 패턴 그리고 인물과 배경을 일체화시킨 평면적 표현에도 그림을 감상할 때 시선이 인물로 옮겨가는 건 목 전체를 감싸고 있는 화려한 초커 때문이기도 하다.


1,900억 원에 팔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초상 I'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 I'(Adele Bloch-Bauer I )이다. 이 그림은 지난 2006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억 3,500만 달러에 판매돼 화제가 됐다. 요즘 환율이 달러 당 1,300원을 넘었으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900억 원에 가깝다. 그림 한 점에 1,900억 원이라니 금이라도 칠했나? 맞다 사실 이 그림은 실제 금박이 입혀지긴 했다. 유대인 사업가 페르난디트 블로흐가 클림트에게 자신의 부인 초상을 의뢰해 그려졌다. 당시 클림트는 잘 나가는 신인 작가였고 작품 의뢰비도 꽤 비쌌다고 한다.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초상 I' 일부

블로흐 부인이 착용한 목 전체를 감싸는 초커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등으로 치장돼 있는데, 남편의 선물이었다. 화려한 보석으로 꾸며진 초커는 19세기 유럽 부유층 여성들의 상징 같은 액세서리였다. 언제부터 여성들이 초커를 하기 시작했는지 또 왜 초커를 하게 됐는지 등에는 여러 설들이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설이 알렉산드리아 공주 유래설과 프랑스 원조설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국 에드워드 7세와 결혼한 덴마크의 알렉산드리아 공주는 패션에 일가견이 있었고, 어느 날 목에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벨벳과 진주로 목 주위를 두르고 다닌 게 유행의 시작이었다는 설이다. 프랑스 원조설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초커가 19세기 영국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상처를 감추기 위함이라는 설에 비해 프랑스 원조설은 생각보다 끔찍한 사건과 연결돼 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참수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패션

초커의 프랑스 기원설은 프랑스혁명 이후 비밀리에 개최된 이른바 '희생자 무도회(Bals des Victimes)'의 드레스 코드였다는 주장이다.  '희생자 무도회(Bals des Victimes)'는 프랑스혁명과 그 후 이어진 공포정치 과정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이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희생된 가족을 기렸다는 일종의 비밀 파티이다.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단두대 희생자의 가족이거나 친척이어야 했고, 참석자는 단두대를 콘셉트로 하는 복장을 갖춰야 입장이 가능했다고 알려진다. 참석 여성들 중 일부가 단두대 참수를 상징하기 위해 목에 붉은 리본을 맸는데, 이게 초커의 원형이라는 주장이다. '희생자 무도회'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초커의 프랑스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밀리에 개최된 만큼 기록에 남아있을 리 있겠냐고 반문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런 류의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프랑스 원조설은 초커의 유래 중 꽤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붉은색이 검은색으로 그리고 조롱의 대상으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붉은색 초커는 영국으로 넘어가 검은색으로 바뀐다. 영국으로 넘어간 초커가 왜 검은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선 영국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조롱의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이 있다. 영국과 벌인 미국의 독립전쟁에 돈을 댄 프랑스에 대한 영국인들의 감정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프랑스혁명과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단두대를 조롱하는 의미로 붉은색으로 유행하던 초커를 검은색으로 바꿔 맸다는 말인데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어쨌든 초커는 18세기를 넘어 19세기에 들어서며 유럽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다만 한편으로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초커를 하며 부유층의 상징으로 삼았고 검은색 초커는 매춘 여성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변질된다.


드가 그림 속 검은 초커는 매춘의 상징

발레 하는 무용수 그림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 그는 특히 무용수들의 춤추는 장면을 순간 포착하듯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드가의 그림 대부분은 여성을 모델로 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누드와 무용수를 주로 그렸는데, 그가 여성 혐오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드가 드가 '에투알' 일부

에드가 드가의 그림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을 탐하는 현실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은 여기에 근간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드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몇몇 특징들이 달리 보인다. 드가는 무용수들을 많이 그렸지만 실제 공연장면 보다 연습 중이거나 무대 뒤 혹은 무대 밖의 모습들을 그렸다. 또 역동적인 그들의 춤 동작을 잘 묘사했지만 정작 무용수들의 얼굴은 뭉개뜨려 불분명하게 표현했다. 드가가 그린 대부분의 무용수 목에 당시 매춘을 상징하는 검은 초커가 그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에투알'에도 이런 특징들이 잘 드러난다. 무대에서 연습 중인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에 비해 불분명한 하게 그려진 얼굴이 매우 대조적이며,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는 초커와 무대 뒤 커튼에 얼굴이 가려진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성의 배치는 작가의 또 다른 의도로 해석된다. 19세기 노동자 계급이었던 무용수들은 생활고에 시달렸고 이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스폰서들이 존재했음을 떠올리게 한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커는?

앞서 살핀 클림트 그림의 주인공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은 안타깝게도 뇌수막 염으로 43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가 착용했던 초커는 조카인 마리 알트만이 결혼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강탈당한다. 강탈당한 보석은 나치의 2인자라 불렸던 헤르만 괴링의 손에 들어갔고 그의 아내가 차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다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보석은 자취를 감췄다. 크림트 그림 속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로 치장된 초커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조카 마리 알트만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초커 목걸이의 행방은 찾지 못했지만 이 초커가 그려진 클림트의 그림은 소송을 통해 되찾았다. 소송의 상대는 오스트리아 정부였는데,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약탈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정부 차원에서 많은 그림들을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겼고 종전 이후 정부가 소유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마리 알트만은 2006년 이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그림을 되찾았다. 그럼 그 그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앞서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이 1억 3,500만 달러에 팔렸다는 얘기 기억하는가? 그렇다 마리 알트만은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놨고 낙찰자는 로널드 로더, 에스티로더의 창업자 아들이었다. 이 그림은 로널드 로더가 설립한 뉴욕의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그림출처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adele-bloch-bauer-i-0001/8AGgCo0-kGh2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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