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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Aug 27. 2021

전환사채 리픽싱 이해하기

리픽싱 제도가 바뀌면 일어날 일들


얼마 전 흠(HMM)슬라의 전환사채 얘기를 다뤘습니다. 산업은행이 투자한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 이슈였죠. (5월 3주 차 위클리 리포트를 참고해보세요) 그때 얘기의 핵심은 오버행 이슈였어요. 벌써 잊어버리셨다고요? 그래서 오늘 복습이자 심화학습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전환사채의 리픽싱 그러니까 주식으로 전환할 때 기준가를 주가의 움직임에 맞춰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볼게요. 준비되셨죠?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리픽싱 제도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지난번에 한번 설명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전환사채에 대한 개념은 잡고 가야죠? 전환사채는 채권이지만, 상황에 따라 주식으로 바뀔 수 있는 요망(?)한 녀석입니다. 지난번에 '잘 안 팔리는 물건에 보너스를 붙여주는 것'이라는 비유를 해드렸어요. 어떤 회사가 자금이 필요한데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힘들고 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려 해도 투자자들이 외면할 때 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조달 수단입니다. 


모양새는 채권이지만 투자자들이 돈을 찾아가는 만기 시점에 원한다면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어떤 기준으로 주식으로 전환하냐고요? 채권을 발행할 때 정한, 전환가라는 가격으로 바꿔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환사채를 발행 때 전환가가 주당 1만 원이었다면 만기 때 이 회사의 주가가 2만 원, 3만 원까지 올랐어도 전환사채로 투자한 투자자들은 회사에 1만 원짜리 주식으로 빌려준 돈을 계산해 바꿔 줍니다. 그럼 투자자는 사실상 1만 원에 주식을 산 셈이니 그대로 주식시장에서 2만 원 혹은 3만 원에 팔아 2배, 3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거죠. 더구나 주가 상황에 따라 전환가를 조정하는 리픽싱까지 활용하게 되면 차익은 훨씬 커집니다.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그걸 발행한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면 이 전환가를 덩달아 주가에 맞춰서 낮추는 겁니다. 1만 원이 아니라 8천 원, 7천 원에 2만 원, 3만 원짜리 주식을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리픽싱 제도가 다른 나라도 있냐고요? 금융시장이 좀 크고 경제규모가 큰 나라 중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만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답니다.


금융위, 리픽싱 제도 손보겠다

출처:서울경제신문

오늘 다시 전환사채 얘기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금융 감독 당국이 전환사채의 악용을 막겠다며 이 리픽싱 제도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빠르면 3분기 내에 제도가 시행될 것 같습니다. 감독당국은 적발된 시세조종 세력들이 이 전환사채를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입니다. 전환사채에 투자하거나 사들인 이후 해당 기업의 주가를 일부러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전환가의 리픽싱이 이뤄지고 더 낮아진 전환가로 차후 만기 때 큰 수익을 보는 거죠. 또 다른 사례는 이렇게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리는데 회사의 대주주가 관여하고 이 대주주는 전환사채에 걸린 콜옵션 조항을 이용해 싼 값에 회사 주식을 더 사들여 자신의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높이는 겁니다. 


콜옵션은 또 뭐냐고요? 살 수 있는 권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A라는 회사가 100만 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발행합니다. 이때 회사는 전환사채에 30%의 콜옵션 조건을 겁니다. 나중에 원하면 회사가 30만 원어치의 전환사채는 되산다는 겁니다. 발행 당시 이 회사의 주가는 1만 원 부근이어서 전환가는 1만 원이었습니다. 전환사채가 발행된 이후 해당 회사에 악재가 쏟아집니다. 주가는 내려가 전환가의 리픽싱이 이뤄져 7천 원으로 떨어지죠. (보통 리픽싱은 발행 시 전환가의 70%까지로 돼 있습니다) 이후 회사는 승승장구해 전환사채 만기가 다가올 때 주가가 7만 원까지 오릅니다. 발행회사의 대주주가 콜옵션을 행사해 30만 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되사오고 1만 원에 주식으로 전환합니다. 대주주는 시장에서 7만 원에 사야 할 주식을 1만 원에 사들여 자신의 지분율을 적은 자금으로 올려 버리는 거죠.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이런 악용 사례를 막는 방법으로 금융당국은 현재 주가가 내려갈 때만 적용하던 리픽싱 제도를 주가가 오르면 발행 당시 정했던 전환가까지는 의무적으로 올리게 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성화 아니야? 뭐가 문제?

논리적으로 보면 당연하죠. 하지만 자금조달 시장에서 들여다보면 걱정거리들이 많습니다. 앞서 잘 안 팔리는 물건에 보너스를 붙여주는 방식이라는 표현으로 전환사채를 설명드렸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보너스의 매력이 떨어지면 이 물건은 어떻게 될까요? 보너스 때문에 조금 팔려나가던 것마저 안 팔리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겠죠? 바로 그겁니다. 투자했다가 원금 회수가 힘들 거 같아 보이는 기업임에도 돈을 투자해 줄 수 있었던 게 바로 이 주식전환 조건이고 기업의 상황이 더 악화됐을 때도 그 위험성을 완충해 주는 조건이 리픽싱이었는데 이게 사라진다면? 아마 자금조달 시장에서 신용도가 떨어지는 또 재무적으로 불안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앞서 대주주가 악용한다는 콜옵션을 언급했었는데요. 반대로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투자자들에게는 풋옵션이라는 조건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전환사채로 투자를 해줬다가 주가가 너무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만기 전이라도 투자한 금액을 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나마 리픽싱 조항이 있어서 투자자들의 풋옵션 행사가 제한되던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면 안 그래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던 기업들은 중간중간 자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다른 악조건에 자금을 유치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제도 개편을 놓고 시세조종을 잡기 위해 애먼 전환사채를 건드린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모기가 보인다고 창문 없애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죠.


투자자들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출처: 프레스나인

제도 변경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환사채의 리픽싱 제도 개선 역시 앞서 언급한 대로 마찬가집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이라면 제도가 바뀐 이후 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해야죠. 전환사채는 주로 재무적으로 어려운 회사들이 발행합니다. 특히 연구개발만 하고 아직 수익이 없는 바이오 회사들의 주 자금 조달 수단입니다. 그리고 회사의 신용도가 좀 떨어지는 코스닥 회사들이 이용하죠. 제도 변경 후 이들 기업들은 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아 유상증자 등으로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들이 전환사채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고 하면 이전보다 더 큰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것 같아요. 주가가 단기적으로 크게 하락하면 풋옵션 행사 등 상환 압박에 시달릴 테니까요.


위 글은 탱고픽 6월 먼슬리 리포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bit.ly/3jipm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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