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시가 요동을 칩니다. 이유도 가지각색 입니다. 중국의 전력난 얘기도 나오고 난데없는 미국 부도 얘기도 나왔습니다. 금리인상과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은 단골이슈구요. 하지만 사실 증시가 조정 장세에 들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간 너무 많이 올랐다일 수도 있습니다. 진짜 공포감에 휩싸여 상승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하락장은 아니라고 본다면 다음 봉오리를 오르기 위한 쉬어가기 또는 너무 무리해 오른 것에 대한 제자리 찾기 정도일 수 있는 거죠. 어쨌든 우리나라를 포함해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로 만들어진 비정상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를 통해 마스크를 벗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의 복귀가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경제와 금융쪽에서는 일단 돈을 풀고 보자고 했던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이른바 테이퍼링의 시도가 정상 상황으로의 복귀 준비라고 할 수 있죠.
앞서 테이퍼링에 대한 용어설명은 몇 차례드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알면 지인들 사이에서 '척' 좀 할 수 있는 경제 용어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이 글은 두달 전쯤에 제가 탱고픽 위클리 리포트에 기고 한 내용입니다. 작성 시점을 참고해서 읽어주세요.
얼마 전 빅배스(Big Bath)라는 용어 설명하면서 샤워 얘기를 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7월 3주차 위클리 리포트를 참고해 보세요.^^ 오늘도 샤워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경제 분야에 샤워와 연관된 얘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암튼 오늘 얘기할 소재는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라는 용어입니다.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미국의 경제학자가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프리드먼은 1976년도에 노벨 경제학상을 탔어요.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는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주의의 대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정치권에서도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최근에도 대권에 도전하시겠다는 모인사가 부친이 주신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해서 여기저기 언급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느껴지시겠지만 굳이 정치인을 좌우로 나눈다면 당연히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우파 쪽에서 좋아하는 인물이죠.
'샤워실의 바보'
밀턴 프리드먼 얘기만 하고 정작 '샤워실의 바보'에 대한 용어 설명은 안 했네요.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샤워하면서 다들 한 번은 겪어봤을 법한 경험을 비유해서 만든 용어거든요. 물이 너무 뜨거워서 찬물을 틀면 물이 차가워지고 그렇다고 다시 뜨거운 물을 확 틀어버리면 또 뜨겁고... 성격 급한 사람들이 물 온도를 서둘러 맞추려다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거죠. 프리드먼은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 개입을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유를 통해 경고했습니다. 특히 1930년의 대공황 사태가 정부의 서툰 통화정책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했어요. 그럼 지금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중앙은행에 쏠린 눈
일단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을 포함해 유럽의 중앙은행 등이 행했던 양적완화 정책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죠. 프리드먼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뒤로 나자빠졌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차가워진 게 아니라 이렇게 놔두면 경기가 아예 얼어버려 회생 불가능이라고 판단하고 당시 뜨거운 물을 정말 확 틀어버린 거니까요. 그리고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뜨거운 물을 잠그고 찬물을 섞었습니다. 이른바 테이퍼링입니다. 코로나19가 뒤덮은 지금의 경제상황도 비슷합니다. 아니 어쩌면 더 과감합니다.
양적완화라는 정책을 처음 시도했던 2008년과 달리 한차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더 과감해진 거죠. 실제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의 연준은 양적완화정책으로 6년 동안 4.5조 달러(우리 돈 5천조원)를 시중에 푼데 반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때 미 연준은 불과 3개월만에 3조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부어버렸거든요. 이게 샤워실의 바보 같은 행동인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섭니다. 일단 경기를 살려내는 데는 효과를 봤으니까요. 문제는 뜨거운 물을 언제 잠그느냐 그리고 여기에 찬물까지 부어야 하느냐가 남았습니다.
비둘기파도 매파의 발언을
최근 미국 연준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는 뉴스가 눈에 띕니다. 이른바 비둘기파로 분류된 인사들이 출구전략인 테이퍼링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경제분야에서 매파는 물가 안정, 금리 인상, 재정안정을 추구하는 인사들을 가리킵니다. 비둘기파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해 금리 인하, 재정지출 확대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하죠. 비둘기파가 매파적 발언을 했다는 걸 통화정책의 무게 추가 출구전략을 의미하는 테이퍼링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하는 거죠. 실제 여러 경제지표들,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물가지수 상승은 연준의 정책 변화를 압박하는 모양샙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탱고픽 위클리 리포트에서 테이퍼링을 언급한 게 올해 2월입니다. 그땐 미 국채 장기물 금리 상승세가 너무 가파르게 나타나며 금리 인하 필요성이 언급됐었거든요. 당시 출구전략은 혼수상태에 빠졌던 환자가 건강이 회복돼 꼽아놨던 링거의 양을 줄이거나 뽑는 거라는 비유를 했습니다. 나쁘게만 볼게 아니라는 거죠. 다만 유동성이 줄어드는 것과 정책 방향이 바뀐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일시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순 있으니 이건 경계해야할 겁니다.
정책 변화보다는 속도가 문제다
사실 제일 우려되는 건 이겁니다. 속도죠. 앞서 2008년 금융위기 때 6년 동안 4.5조 달러를 풀었고,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선 미 연준이 3개월 새 3조 달러를 풀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정말 말 그대로 뜨거운 물 수도꼭지를 끝까지 확 풀어버린 겁니다. 이걸 조여야 하는데 자칫 '샤워실의 바보' 같은 행동이 될까 우려하는 거죠. 너무 빨리 풀어버려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그 속도도 좀 빠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난생처음 운전을 하면 조심스럽게 하기 마련이고 한두 번 해보면서 요령도 생기고 과감해지듯 연준도 그럴 거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최근 자꾸 나오는 비둘기파들의 매파적 발언도 시장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는 연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