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흙으로!!! 마을로 정원사 나가십니닷.
안에서 새는 정원놀이 오지랖이 게릴라 정원을 거쳐서 이제 밖으로 번졌다.
이미 동네 텃밭을 분양받았을 때 남들처럼 채소만 심지 않고 백일홍과 허브를 심어 벌들이 많아졌다고 눈총을 받기는 했지만... 좀 더 공공적인 일을 갑자기 하게 되었다.
사실 계기는 자그마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아이 학교에서 마당 화분을 꾸미는데 누군가 학부모 중 조경전공자가 있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하고 싶지는 않은 게 몇 년 전 앞마당을 야생화랑 내가 아끼는 저먼 아이리스 (뿌리를 분근해서)를 심어 가꾸었더니 내 의견도 묻지 않고 갑자기 다 베어버리고 잔디밭으로 가꾸는 일을 저질러서 화가 안 풀린 상태였다. 그래도 또 부탁하기에 치매처럼 예전일을 잊고 화단을 좀 꾸며주었다.
자연스러운 화분을 꾸미는데 내가 보기에 만족스럽게 된 것까지는 좋았다. 드다다.... 여기에서 일이 벌어졌다. 그다음 해 동네가 속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하는 사업 중에 동네의 맹꽁이 서식지 정비와 마을 체육공원 일대 정원 사업이 나온 모양인데 이 사업을 학부모 몇 명이 신청했는데 신청한 후에 나를 섭외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원체 모이는 것을 싫어해서 정말 망설이다가 여러 번 고심 끝에 승낙을 했다.
결론적으로 너무 재미있는 한 해였지만, 정원 가꾸기의 60%는 호미보다, 곡괭이와 삽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일단 망가진 땅의 잡초를 캐고 곡괭이질은 물론,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부터 해결해야 했다. 조경공사 이전에 토목공사라고나 할까
그래도 깨끗이 정리하고 맹꽁이 숲의 쓰레기, 우거진 외래종 풀들을 제거하기도 하며 동네 아이들이 자주 넘어지던 곳에 간단한 계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가장 행복할 때는... 역시 지름신이 강림하셔서 꽃과 식물을 쇼핑할 때였다. 예전에는 인터넷 혹은 양재동 꽃시장만 살짝 들렀다가 거대한 서초동 내곡동인가 가 보니 엄청난 규모의 모종농원을 가보니 정말 별세계였다.
( 올리브 가든이 내 소원인데 ㅠㅠㅠㅠ)
우와 내가 이재용 회장이라면 여기를 다 사고 싶은. 일단 같이 간 팀원들도 모두 나와 같은 즐거운 패닉 증세여서 워워 다운시키고 식물을 고를 때 몇 가지 원칙 (햇빛, 토양, 수분 조건)등을 알려주고 지름신을 멀리하게 해... 지만 그래도 계속 골라오는 것을 되돌리기를 수차례. 드디어 마을 땅에 맞는 식물을 골라 돌아왔다. 그리
고 또 삽질과 곡괭이질...
체육 시설 옆에는 간단한 벽돌 펜스로 허브위주의 가든을 만들었다. 허브가 원래 대부분 잘 자라는 야생화류에서 출발했기에 관리가 용이한 아이들로 골랐다. 라벤더, 구절초, 꽃부추, 민트, 토종 박하, 방아, 바질, 루꼴라, 고수 (고수 꽃이 얼마나 예쁜지), 세이지,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당귀. 몇 가지는 발아를 시켜서 심기도 했다. 이 허브 아이들은 먹기도 좋지만, 향기, 꽃도 훌륭해서 봄, 여름, 가을 내내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원이 되었다. 주말마다 산책하시는 분들에게 ‘좀 따 가세요’ 하고 말할 정도로.
고수 꽃, 세이지꽃 등이 너무 예쁘고 향도 좋아서 팀원, 마을 주민들 그리고 동네 산에서 몰려온 꿀벌들이 모두 만족했다.
한편 맹꽁이 연못에는 부레옥잠, 물배추를 조금만 개체 넣었더니 나중에 연못을 꽉 채웠고, 맹꽁이뿐만 아니라 개구리, 두꺼비도 들락날락. 습지에 어울리는 사초, 노루오줌풀 등을 잘 심어서 정비했다.
힘이 들었지만 여름에 아이들이 생태 학습하면서 맹꽁이를 관찰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힘이 불끈. 맹꽁이뿐만 아니라 많은 양서류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다음 사진에서 찾아보세요. 물론 관찰하고 다 놓아줬죠.
그리고 허브랑 연못이 뜨겁게 자라는 너무 멋진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다른 풀들이 함께 자라면서 심은 듯 안 심은 듯 멋진 자연주의 정원? (사실은 게을러서)이 되었다.
허브 정원은 게다가 좋은 게 한번 심으면 씨가 저절로 나서 다음 해에도 더 잘 자라기에 거의 손이 타지 않는 (여름 김매기는 필요하지만) 것에서 '이래서 허브가든 허브가든 하는구나'라고 떠올랐다. 덤으로 허브를 핑계로 자주 고기 파티와 파스타 요리도 집에서... 게다가 고수가 너무 잘 자라줘서 아무 데나 고수를 뿌리는 사치도 누렸다.
그리고... 음... 주말만 작업하다 보니 게으른 게 오히려 이점이 되어 드러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가든이 만들어졌다. 역시 가드닝은 게을러야 컼.
마지막으로 다음 해 봄을 위해 체육공원 옆에 튤립 구근을 (왜들 이리 손이 큰지...) 왕창 심어서 그다음 해 멋진 튤립도 보게 되었다. 산책 나온 이웃들도 너무나 좋아하고 덤으로 이곳에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는 게 확 줄기도 했다.
밖에서 정원놀이를 한 것도 좋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허브를 마음껏 땅에다 심어보고, 습지도 가꾼 것이 한 해가 꽉 찬 느낌이었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고 (허리가 거의 망가지는 ㅠㅠ) 의견다툼 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보람 있는 한 해였다. 게다가 여럿이 열심히 (물론 막걸리도) 함께하며 작업하는 보람과 기쁨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옆의 모내기도 도와주기도 하면서 한해 나답지 않게 공동체로 정원 작업을 한 멋진 한 해였다.
그리고 이듬해는 참여를 안 했지만 다음 사람들이 더 잘 가꾸어주고 팻말도 만들고 해서 보기 좋은 곳으로 변해갔다. 이 와중에 베란다 정원도 이따금 손보고 또 나만의 즐거움도 만끽!
어쨌든 집을 나와 게릴라에서 공동 정원을 가꾼 한 해를 보냈고 이 경험이 '이제는!' 하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을 바꿔볼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