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내 이야기는 분명 아니지만,

by 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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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고편을 보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흥미로울 것 같았지만 결국 그저 그런 성장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서 영화를 보러 갔을 때는, 그냥 '뭐라도 해야지'하는 마음이었다.

영화는 예상했던 그만큼의 성장 영화였다.


남들과 같기를 거부하는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자신의 본명이 아닌,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 '레이디 버드'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 장단에 맞추어주듯 그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은 모두 그를 '레이디 버드' 혹은 '버디 Birdy'라고 친근하게 불러준다. 그는 금전적인 문제로 부모님, 특히 엄마인 매리언(로리 멧칼프 분)과 잦은 갈등을 빚는데,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을 가고 싶어 한다. 메리언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빠 래리(트레이시 렛츠 분)의 도움으로 마침내 고향을 벗어나 뉴욕의 대학을 입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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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의 10대 시절의 이야기이며, 그가 뉴욕에 도착해서 부모님과 통화하며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이 좋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갈등은 마무리가 된다.


나도 10대 시절, 아니 실은 20대 초반까지도 그와 비슷한 문제에 빠져 있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해지기만 할 뿐,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던 것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막아주었다는 것이다. 대학은 고향(지방)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되어서 오히려 좀 더 상황이 나아지기도 했다.

일전에 내 필명에 대해 썼던 에세이에서도 밝혔듯이,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이름보다는, 나 스스로가 되고 싶은 나에 집중하며 나에게 필명을 지어주었다. 실은 이 필명을 짓기 전에, 인터넷에서 쓰던 닉네임이 있었다. 나는 본명보다 필명이나 닉네임으로 불리길 원했고, 20대 초반까지도 꽤 닉네임으로 많이 불렸다. 본명도 사랑하게 된 지금에서도 닉네임은 영어 이름으로 사용하고, 필명을 따로 쓰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 이름들은 나의 인생을 통과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틴이,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 엄마와 진정한 화해를 마치고 '크리스틴'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다시 부르게 됨으로써 삶의 어떤 방식을 바꾸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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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실은, 엄마와 갈등을 빚는 장면에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나 역시 엄마와 원만한 관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다툼'을 할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응답'으로 응답을 했기에, 영화 속의 레이디 버드와 그의 엄마 매리언이 서로를 향해 악 쓰고 소리 지리는 장면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관계의 진전은 대화에서 나온다. 레이디 버드가 매리언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을 하고 합격했다는 사실을 매리언이 알게 된 순간, 매리언은 철저히 레이디 버드를 무시하며 대화를 하지 않으려 든다. 이것이 그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침묵시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애정이 있어, 결국 관계 회복을 향한 대화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사람마다 영화를 보는 눈은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이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영화로 꼽히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설령 나에게 '최악의 영화'로 꼽히는 영화일지라도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지점을 찾아낸다.

<레이디 버드>는 그런 점에서 (최악의 영화는 분명 아니었지만) 내 10대와 20대 시절을 찬찬히 돌아보게 만들고,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내가 엄마와 화해를 할 수는 있을까? 나는 레이디 버드가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방식의 관계 회복은 결코 할 수 없겠지만, 나의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어떤 개선점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으며 현재도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가족과 화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분명 없지만, 어떤 점에서는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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