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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n 16. 2018

오션스 8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오션스 8


영화는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 분)이 감옥의 가석방 심사를 받으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물론 그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언제 눈물을 보였냐는 듯 습관처럼 절도를 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히 DNA에서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션스 8은 기존의 오션스 시리즈에서 한 갈래를 끌어온 스핀오프 작품이다. 극 중 데비 오션의 사망한 오빠로 나오는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분)은 기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션스 시리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다른 시리즈들과의 비교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션스 8을 보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예고편에 나왔던 너무 예쁜 앤 해서웨이 때문기도 했고.


얌체같고 약삭빠르지만 너무도 예쁘게 나온 다프네 클루거(앤 해서웨이 분)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이면서 주인공을 전부 여성으로 설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페미니즘 적' 영화가 되었다. 덕분에 여럿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모양인데, 이 영화는 과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성평등 한 영화를 가리키는 지표인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이는 1)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2) 그 여성 둘이 대화를 할 것, 3) 대화 내용에 남성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있을 것, 을 성평등 영화의 척도로서 제시하고 있는데 슬프게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화가 의외로 적다. 근래 들어 조금 늘어난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암울한 수준이다.

이 중에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작품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상황에서 오로지 여성들로만 주연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컨셉의 이 영화가 가히 페미니즘을 이끌어내는 영화라고 칭송받거나, 페미니즘 이야기하느라 재밌는 것들을 다 놓친다는 비난을 받을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다양한 인종을 담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데비 오션, 루(케이트 블란쳇 분), 다프네 클루거, 태미(사라 폴슨 분), 로즈(핼레나 본햄 카터) 등 대부분이 백인이지만, 흑인 나인볼(리아나 분), 아시안 아미타(민디 캘링 분)와 콘스탄스(아콰피나)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논쟁 지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히스패닉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등)

글쎄 꽤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만든다니까

화려한 액션은 없다. 화려한 보석들만 눈을 호강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그들은 단지 각자 자기만의 이유로 모였고 같이 일을 할 뿐이었다. 허술해 보이지만 그들을 연결해 주는 동지애 같은 것들은 분명 존재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이들의 범죄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부분이 재미있기도 했다. 동시에 과연 나라면 할 수 있을까를 가늠해보기도 했고.

모든 캐릭터가 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루에게 가장 많이 눈길이 갔다. 물론 앤 해서웨이에게서도 눈을 뗄 수 없었지만, 루의 포스는 남달랐는데 아마 많은 여성 관객들이 그의 카리스마에 심장이 떨리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다고, 여성들을 주연으로 구성한다고 해서 꼭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아도 좋다. 정치적으로 올바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도 괜찮은, 남성들이 주연한, 그런 영화들 속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여성들 주연의 엉망진창인 영화들이 없어선 안 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영화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다양한 여성들을 더 많은 채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비 오션은 목걸이를 훔치러 출전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나 우리들을 위해서가 아니야.
미래에 범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를 위한 거야.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냐고? 글쎄, 그건 본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Copyright. 2018.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벡델 테스트 참고 : http://indiespace.kr/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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