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를 분석한다.
한국 남자
최태섭
yes24의 회원인 나도 그 메일을 받았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제목이라고 생각을 했고, 어차피 광고 메일이라 읽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어서 기사까지 날 줄은 몰랐다!
http://news.newsway.co.kr/news/view?tp=1&ud=2018120709414737799
그리고 페미니즘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용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매끄럽게 잘 이어지며, 한국 남자의 남성성에 대한 역사를 잘 풀어냈다. 읽기도 쉬운 단어들과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남성성/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우선은 생물학적으로/사회적으로도 여성으로 규정이 되었기 때문에 여성성이라는 것이 내 인생의 화두가 아닐 수 없었다. 여성학 세미나를 처음 듣고 난 후에,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을 알고 난 후에는 나의 젠더를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지도 많은 고민을 했다. 무엇이 나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일까. 주민등록번호의 숫자? 가슴? 질이나 자궁? 염색체나 호르몬? 그렇다면 내가 갑자기 유방암에 걸려 가슴이 모두 도려내야 한다면 그때도 나를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호르몬 이상으로 혹은 모종의 질병을 이유로 나를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가리키던 지표들이 사라졌을 때도 나는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여성다운 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지만, 돌고 돌아서 나는 나를 여성이라고 부르기로 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여성이어야만 하는 나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주변부를 맴도는 내 모습들 - 가끔 머리를 매우 짧게 자르고, 화장을 자주 하지 않고, 늘 덤벙거리고, 그러니까 무엇보다 '여성스럽지 않은' 모습들 - 을 보면서도 나는 나를 '여성'으로 정의했다. 누가 뭐래도.
비교적 남성성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나니까, 남성성이란 것도 허구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P. 75 남성성 이상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이상형에 맞는 남자를 현실에서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남성성의 발현과 역사적으로 변화한 과정, 그리고 끝내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느낀다.
스스로는 그런 '한남'과 다르다며 선긋기를 하는 남자들 중에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나는 책을 읽으면 누구나 생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이 책, <한국, 남자>는 '한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은 없었다. 현재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조롱하는 것 같은 표현이 곳곳에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역사적/현상학적으로 분석한 글에 가까웠다. 페미니즘을 빼놓고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조금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썩 괜찮았다. 대체 이 책을 읽은 남자들이 어느 부분에서 기분 나빠할지 알 수가 없었는데 (아주 가끔 등장하는 힐난 조의 표현을 제외한다면)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나는 아주 선량한 한국에 사는 청년, 남성이고 일베 회원도 아니고 여성 혐오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와 같은 남자들도 일베를 하는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틀렸다."
"극소수의 아주 나쁜 남자들을 전체 일반 남자들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남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즉,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조차도 지금은 이렇게 페미니즘에 대해 똑똑한 척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이게 단 몇 개월만 지나도 흰소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다만 나의 부족함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물론 이미 충분히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노력까지 하려고 하면 더 괴로울 수밖에 없지만, 문제는 이런 노력을 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남성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책에서 짚어냈다.
P. 189 2000년대 한국사회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자기 피해자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P 266 청년 여성의 취업도 문제였지만, 청년 남성들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결혼해서 가정으로 사라질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청년 여성들은 좁은 경쟁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였고, 청년 남성들은 세대론을 면죄부로 자기 연민에 빠져들었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책을 읽으면 명확해지니, 그 부분은 책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한국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모든 한국 남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이 곳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군대를 아직 다녀오지 않은 청소년기의 남자들에게도 영향을 분명하게 미치고 있고,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영향을 준다.
문제는 군대에서의 경험과 트라우마를 자신보다 약자에게 풀어내는 이들이 절대 다수인 것, 그러므로 이 징병제 시스템이 한동안 바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쉽게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 남자들이 혁명에 눈을 떠서 징병제를 뒤엎고 이 나라의 제도를 바꾸려 들지 않는 한은.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호주제를 바꾸려 했던 여성들과 관련 단체들만큼의 의지가 있을까? 이 책에서도 나와있듯, 가부장제는 (그리고 가부장제적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징병제라는 시스템도)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만 젠더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되고 있다. 현실은 좀 다르지만 그런 환상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뀔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읽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
그게 바로 모든 '한국 남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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