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또 남자를 죽였고, 이제는 내가 짝사랑하는 그를 넘본다.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전자책 리더기 페이퍼 프로를 장만하고 처음으로 유료 소설을 구매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제목부터가 신선해 이목을 끌었으며, 첫 문장부터 흡인력 있게 시작되었다. 읽다가 다시 제목을 봤다. 영어 원제는 <My Sister, the Serial Killer>였고 번역가의 재치에 감탄했다. 나였다면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내 여동생은 연쇄살인범" 따위의 지루하고 따분한 제목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간결하고 쉬운 호흡으로 빠르게 이어진다. 화자인 코레데는 여동생 아율라가 사귀던 남자 친구를 살해하면 그 시체를 치우고 청소를 해준다. 세 번째 피해자를 '청소'하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전까지는 분명 전 남자 친구가 어떤 잘못을 했고 정당방위를 충분히 주장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납득했지만, 세 번째 피해자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아율라가 정말 이제껏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한 것이 맞을까? 하지만 코레데는 그런 의심의 싹도 함께 청소한다.
배경은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다. 한국에서라면 아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 이곳에선 가능하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하다가 경찰에게 잡히면 돈을 쥐어 주면 된다. 밤늦게 강가에 시체를 던져 버려도 밤새 지켜보는 눈(CCTV) 같은 건 없다.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미친 듯이 연쇄살인을 저질러도 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P. 65 중학교는 때로 잔인한 곳이 되기도 한다. 남학생들은 콜라 병 모양의 8자형 여학생과 막대기 같은 1자형 여학생의 목록을 만들곤 한다. 여학생을 그린 그림에다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과장되게 채워 넣고는 온 세상이 다 보라는 듯 학교 게시판에 붙인다. 선생님이 눈에 띄는 대로 떼어내기는 하지만, 그림을 붙였던 핀에는 비웃음처럼 종잇조각이 남는다.
서울 모 교대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리스트를 작성해 졸업생 선배들에게 '상납'했다는 사실이 이 문장과 겹쳐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분명 세계 반대 편에 있는 나라인데 어떤 삶의 모습은 정말 소름 끼치게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을 한다. 전 남자 친구의 목을 따버리고 싶은 여자들은 마구잡이로 날뛰며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아율라를 보고 통쾌해할까? 아니면 화자인 코레데를 보며 현실적인 걱정을 달고서, 그래도 어떤 자매애 같은 것에 얽매일까.
하지만 사실 코레데가 단순한 '자매애' 때문에 아율라의 살인을 돕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살인 후 뒤처리를 돕는 것이지만.) 이 자매에게는 서로를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쌓아 올린 위험한 신뢰가 바탕이 된다. 이 모습 또한 어딘가 낯이 익다.
나이지리아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중에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라는 이름은 들어서 일고 있었지만 (그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은 것이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여성들의 경험은 어떤 부분에서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견고한 다리가 된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체에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었지만, 내용에는 확실한 무게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율라를 머리가 빈, 멍청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미친 여자 정도로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니까. 동시에 이런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양한 여성 이야기가 나와서 '여성 서사'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 없어질 정도가 되면 좋겠다.
소설은 자매의 결속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화자인 코레데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가 아율라에게 빠지자 질투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율라의 편에 선다.
우리는 서로의 편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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