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토스테론 렉스
코델리아 파인
테스토스테론, 소위 '남성 호르몬'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호르몬은 종종 일상에서 왕처럼 군림한다.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남성 호르몬이 넘쳐서'라고 변명을 붙여 주거나, 근육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테스토스테론 덕분'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일전에 직장 상사가 내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해후 씨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이 스포츠 여성부문에 참가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세요?"
좀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대답하지 않으려다가 괜히 사이가 나빠질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했다.
첫째, 남성과 여성, 이분법적인 성 구분 방식은 너무 고리타분하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여성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 상에 각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포츠 경기를 남성과 여성 부문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아니라, 체급이나 체격에 따른 차이를 둘 수 있다고 본다. 유도처럼 몇 kg 이하 급으로 나누어서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경기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공평함이란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 있다. 성별 조건만 같으면 모든 조건이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는 그 특성상 신체적 조건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 가령 좋은 곳에 태어나 양질의 음식을 먹으며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성장한 사람과 가난한 곳에서 어렵게 살며 시간을 쪼개 훈련하며 성장한 사람이 같은 출발선 상에 서는 것은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정말 '공평성'을 따지려면 최소한 경기 이전 몇 달 간이라도 같은 환경에 두고 같은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상사는 내게 요즘 이 문제가 미국 스포츠계에서 화두라고 말하며 내 말이 일리 있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트랜스젠더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애매하다며 슬쩍 넘어갔다.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꼈다.
<테스토스테론 렉스>라는 책은 <한국, 남자> 저자인 최태섭이 쓴 기사를 읽고 읽어보게 되었다. 기사만 읽어도 좋을 뻔했다. 번역이 나빠서 그런 거겠지, 수십 번 되뇌며 꾸역꾸역 읽었다. 마침내 다 읽었을 땐, 아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서.
그래도 눈에 띄는 구절들은 있었다.
P. 165 우리는 특정 유형의 행동을 '테스토스테론의 자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오히려 행동이나 상황이 '테스토스테론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인 경우가 많다.
테스토스테론에 관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은 다른 가독성 좋은 칼럼도 많으니까, 그쪽을 다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도 나쁜 책은 아닌데 읽기가 너무 힘드니.
*참고 기사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648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db9bb1e4b04367a87afa92?utm_id=n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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