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넷페미사
권김현영 손희정 박은하 이민경
한 때는 내가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 였던 적이 있었다. 온 갖가지 페미니즘 이슈를 가지고 트위터에서 하고 싶은 말 잔뜩 하며 털어냈다. 사람들은 종종 환호해 주었고, 야유했고, 응원했으며, 또한 공격하기도 했다. 나의 말들은 거침이 없었고 강렬했으며 또한 날카로웠다. 아니 무엇보다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20대 초, 중반이었고 익명성 아닌 익명성에 기대어 나의 분노를 쏟아내기에 트위터 만한 매체가 없었다. 일단 한 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눈 앞에서는 사라지고 또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영원히 박제가 되어 계폭(계정 폭파, 계정을 영구히 삭제하는 것)을 한 현재까지도 인터넷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대한민국 넷페미사>에는 인터넷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온라인 세상을 종횡무진하던 '넷페미(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페미니스트)' 이야기가 있었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이 유행이었던 때에도 그곳에는 페미니스트가 있었고, 물론 지금 현재도 '메갈'이니 '워마드니' 불리는 온라인 페미니스트 집단이 있다.
그때와 지금의 세대는 달라졌어도 하고 있는 말은 다르지 않다. '이 땅에 페미니즘을'
P. 19 초기의 인터넷 기술 개발자와 네티즌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개인이 동등하고 자유롭게 교류해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넷윤리로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건 속에서 개개인이 동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넘쳐흐르던 시기입니다.
요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을 따로 구분을 두지 않는다. 초기 PC통신 시절이나 초기 인터넷 시기만 하더라도 오프라인 세상을 온라인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흘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따라서 넷페미니스트들의 활동 양상도 조금씩 달라져왔다. 그런 지점들을 차근히 짚어가며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얘기한다.
P. 129 "여성의 목소리가 많아지는 게 진보인 거지, 그 목소리가 다 옳은 얘기여야 진보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침묵당했던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먼저 말하고 떠들고 설치기 시작했고, 행동으로도 크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요즘의 이런 세태가 반갑고 즐겁다. 그들이 하는 말들이 다 옳아서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많아져서다.
페미니즘 독서모임에서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최근 논란이 된 자칭 여성학자 '오세라비'와 관련하여, 그의 말은 너무도 틀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목소리로 말하는 '너희의 페미니즘은 틀렸다'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잘못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의 다른 참가자분은 이 현상을 재미있다며, "예전 같았으면 '어딜 여자가!'하며 훈계했을 남성들이, 오세라비의 뒤에서 그의 말이 맞다며 환호하는 것을 보면 썩 재미있다."라고 했던 맥락이다.
책은 쉽게 쓰였고, 인터넷을 향유한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서 가벼운 입문서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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