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미니즘 독서모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미 있는 모임에 결원이 나서 우연찮게 참가하게 되었는데, 참여하자마자 읽게 된 책이 <학교에 페미니즘을>이었다. 총 3장에 마지막 '함께 읽어보기' 챕터가 있는 책이었고,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수업에 페미니즘을 녹여내는 이야기들이 에세이처럼 실려 있었다.
어떤 책이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겠지만,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내가 학교를 다녔던 옛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이었을 때, 그리고 고등학생이었을 때. 각각의 세계에서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차별을 겪으며 나는 어딘가 주눅 든 학생이었고, 자존감이 낮은 어른으로 자라났다.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51번부터 번호가 부여된다거나, 사소한 기회도 남학생에게 먼저 주어지곤 했다. 체육시간에 신나게 뛰어노는 남학생은 '남자아이니까 당연히' 그런 거고, 남자아이들마저 뛰어넘는 체육 실력을 보여주는 여학생은 '여자애가 저렇게 왈가닥이어서 어쩌나.'였다. 수업 시간에 조용히 선생님 말을 경청하며 바른 글씨로 필기를 하는 여학생은 '여자 아이다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고, 숫기가 없고 목소리가 작지만 차분한 남학생은 '남자답지 않아서 큰일'이 났다고들 했다.
나는 자라면서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하지 못하며 컸다. 불편한 무언가가 분명 있었지만, 어디가 왜 불편한지 내 언어로 표현할 줄을 몰라서 참거나, '괜히 예민하게 군다'는 소리를 들으며 꾹 참기도 했다.
<학교에 페미니즘>은 이런 사소한 불편을 아이들이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한 선생님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분명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가령, 화장을 하는 열세 살 여자 아이들을 타이르거나 혼내지 않고, 교실에 '외모 평가하지 않기'라는 규칙을 세운다. 그 결과 다른 선생님이 "오늘따라 예쁘네."라는 칭찬을 하더라도, "그건 외모 평가예요."하고 어른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다. 화장도 조금은 덜 강박적으로 접근하게 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대부분 교사가 교실에 적용 가능한 페미니즘을 풀어놓았지만, 실은 이것은 현재 우리의 삶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고, 또한 아이들을 양육하는 보호자들에게도 유용한 지침이 되기도 한다.
2016년 S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어떻게 영재가 되는가: 섬세한 아빠 터프한 엄마>를 예시로 들면서, 성평등 한 교육 환경이 아이들의 창의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양성평등 유치원'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는 교육 환경(유치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환경에서 부모가 가사를 분담하거나 성 고정관념이 있는 언행을 조심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아이들이 성역할 고정관념은 줄어들고 친구 관계를 유연히 대처하거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더 보여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P. 134 성 고정관념이 강할수록 아이들은 말과 행동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남자아이니까 이래야 해, 여자 아이니까 이러면 안 돼, 그런 말들이 아이들의 많은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이들의 행동에도 분명한 제약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아직 발전할 길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에게 특히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판검사가 꿈인 여자 아이에게 그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고,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에게 '직업에는 성별이 없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며 페미니즘의 목표가 아닐까.
요즘 '스쿨 미투'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이제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은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나서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미디어의 힘이 물론 크겠지만,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일 것이다. 페미니즘의 연대. 새삼 그들이 부럽다고 느껴지면서, 또한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은 앞으로 훨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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