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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케이트 쇼팽

by 희연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케이트 쇼팽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동일한 제목의 단편을 포함하여 총 여섯 가지 단편이 실린 책이다. 케이트 쇼팽이라는 작가를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에 이끌린 것은 분명 사실이다. 페미니즘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보자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굳이 찾아 읽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인지, 어떤 소설이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요즘에 와서는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페미니즘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섯 가지 단편 모두 나에게 다양한 감상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나오는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자유를 느끼며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는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되는 '오직 자신을 위해 살' 맬라드 부인의 이야기였다. 짧고 빠른 호흡의 이야기는 뜻밖의 반전을 선사하며 마무리되었는데, 이 단편을 읽은 직후에 느낀 감상을 적으면 책 내용이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데, 실로 그 '자유'를 느껴본 사람만이 자유의 맛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렇게 자유를 알아버린 사람은 자유가 사라진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편 <최면>은 읽으면서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약혼녀 폴린을 안 좋게 생각하는 패버햄에게 최면을 걸어 그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그레이엄은, 결국 그가 한 행동의 대가로 폴린을 놓아주어야만 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하지 않았'지만 그레이엄의 최면을 통해 폴린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패버햄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편견 없이 보기 시작하면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폴린을 놓아주며 그레이엄이 폴린에게 하는 말이 뭉클했다. 19세기에 쓰인 소설에 폴린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여성상을 그려낸 것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그의 의사에 순순히 따르는 남성의 이미지를 그려낸 것도

<아내의 편지>는 조금 잔인한 아내의 부탁으로, 남편이 죽은 아내의 부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집착하여 결국엔 파멸에 이르는 내용이었다. 갖은 상상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다 이내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는 부분이 우스우면서도, 실제로 '믿는다'는 말을 쉽게 내뱉으며 의심하고 집착했던 수많은 구남친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구남친들 뿐만 아니라 친구의 구남친들 모두.)

<라일락>은 읽고 나서 무슨 얘기인지 잘 몰랐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니 라일락이 가지는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라일락 향을 생각하며 읽고, 시골의 풍경과 수녀원의 다정한 수녀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으니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기분이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은 후에 다시 읽어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신비로운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가진 생각에 따라 다르기 읽히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섯 번째 단편 <데지레의 아기>를 읽으면서는, 이런 문제는 동서를 막론하고 똑같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막연히 서양은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모두 엄마에게 문제가 있다고 혐의를 몰았단 사실이 소름 끼쳤다. 출산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라 생각은 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한 아기를 낳는 것'이 여성이 다 해야 할 소임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저출산 대책'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상처받은 데지레를 받아주는 치유자는 그의 엄마, 즉 같은 여성이었다.

마지막 <바이유 너머>는 희망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트라우마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아마도 여러 사람에게 빛이 되어 줄 것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각각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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