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소설 1] 한 송이 장미

<서울역의 꾀죄죄한 노숙자가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다.>

by 희연


한 송이 장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장미꽃을 내밀었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다가 내 손에 있던 장미꽃을 휙 나꿔챘다. 다른 손에 들려있던 소주병을 거꾸로 쥐고 높게 들어 올리고 다시 위협적으로 씩씩거렸다. 나는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듯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이른 아침 분주한 출근길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속에서 장미꽃을 나누어주는 이유가 거창하진 않았다. 생명의 소중함, 인생의 아름다움, 뭐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하고 싶어서라고 말을 해도 보통은 그래도 진짜 이유가 있지 않느냐며 본인들이 원하는 대답을 종용하곤 했으니까.

대게는 나를 장사치 대하듯 환멸의 눈빛을 보내며 지나쳤고 더러는 경멸 조의 말을 쏟아내거나, 아침부터 재수 없게 구걸질이냐며 침까지 뱉기도 했다.


몇 해 전 사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다가 창밖에 핀 장미 덤불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나는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봉우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 삶은 이제 꽃을 피워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진부한 사연을 안고 서울역에서 장미꽃을 나누어주게 되었다.


이런 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내 주 활동무대가 서울역이긴 했지만 나도 기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원래 형체를 알 수도 없는 천 조각들을 입고 또 입은 사람들이었다. 모든 이들에게 찬 바람이 드는 겨울은 힘든 계절이지만, 유독 추위에 더 취약한 이들이 있다. 얇은 모포 한 장으로 겨우 몸을 녹이며 겨울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이들. 며칠 못 씻은 정도가 아니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물로 씻어 본 적이 없는 몰골로 서울역 곳곳을 자기 집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의도적으로 그들이 있는 곳을 피해 다니며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을 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혹은 정말 아주 우연하게도,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살금살금 눈치를 보다가 훌쩍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내가 자신을 발견하고 눈치를 보며 자리를 옮길 준비 하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더 다가오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어떤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그러고 있는 줄 알아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 그는 순박하게 웃어버렸다. 나는 어지러워졌다.

마침내 더 이상은 도망칠 수가 없게 되었다. 머뭇거리다가, 그러나 머뭇거렸던 티는 최대한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그는 내게 다가오다가 자신의 가슴팍에 닿을 듯 말 듯 불쑥 나타난 장미꽃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 얼굴과 장미꽃을 번갈아 보다가,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은 평생에 아름다움이란 취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하찮은 색이었다. 내가 감히 이 아름다운 꽃을 나의 이 더럽고 추한 손에 쥐어도 되나요?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웃어 보일 수는 없었다. 그가 먼발치서 나에 대한 고래고래 소리 지른 적도 있었다. 나를 해코지할까 두려웠다. 애써 손을 떨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그는,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서, 장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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