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기록의 기록물

by 희연

뭐든 기록해버리는 내 습성 탓에 지난 기록들을 우연히 들추어보게 되는 때가 있다. 사실은 이걸 기록했었다는 것조차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데 발견된 기록물들이 내 기억을 채워가며 존재감을 위시한다. 오늘 발견한 그 날 그때의 기억들이 그랬다. 2013년 11월 3일. 너를 향해 불꽃같이 타올랐던 나의 마음을 기록한 것들.

나는 너를 하마 군이라고 부르며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모두 쏟아냈다. 글자 하나하나가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설익은 감정들이 춤을 췄다. 그런 기록들이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거저 흐르지 않았다. 그때의 감정은 퇴색되었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그때의 마음만큼 불꽃같지 않다. 우습게도 이렇게 써 놔야지만 나는 너를 모두 극복할 것 같다. 그러니까 너에게서 떨어져 나온 나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사실은 아직 다 지우지 못했다. 아마도 몇 해 전에 이 기록물들을 발견했던 적이 또 있었을 거다. 그때는 차마 지우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하나 씩 지우고 있다. 다 지워지고 나면 너를 향한 내 감정도 모두 지워져 버릴까 봐 차마. 이제 와서 지워나가는 이유는 이 기록물들이 어딘가 다른 곳에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일까, 아니면 이젠 지워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후자라면 좋겠다, 나는 너를 지우고 싶다.


우리의 연애는 길지 않았다. 짧지도 않았다. 너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만, 나는 한동안 잘 살지 못했다. 지금도 이따금 너를 떠올리며 가슴이 저린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네가 그립다. 너를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이 마음은 미련인가, 아니면 후회인가. 어딘가에 너를 보고 싶어 했던 간절한 내 마음을 기록해 둔 것도 있다. 그렇게 내 감정의 기록들은 곳곳에 산재해있다. 이것도 그런 기록으로 남아있겠지.


기록으로는 평생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어렴풋이 짐작만 하게 되는 생각과 기분과 그 순간의 강렬한 느낌. 글자나 그림이나 사진 같은 것들로 순간을 저장해 두어도 결국 그 당시의 생생함까지 끌어오지는 못한다. 그만큼 너에 대한 나의 기록들이 죽어버렸다. 우리의 관계는 죽어버린 생선의 눈깔처럼 흐리멍덩해져 버렸다. 내 기록들로 그것들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숨을 불어넣는다. 우리 그때 그랬지, 그런 약속들도 했었잖아.


메아리가 되어버린다, 목적지를 잃은 글자들이 휘몰아친다. 내 가슴에 가라앉는다, 글자들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침잠한다. 그렇게 또 너의 기록을 하나 지우면서 너에 대한 기록을 하나 더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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